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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이리 예술마을, 헤이리스, 벙커힐
    후기/여행 2024. 3. 19. 06:18

    # 01.

     

    양평역에서 미리 화장실을 다녀왔음에도 2시간가량 터질듯한 방광을 어르고 달래며 간신히 도착한 그곳은 바로,

     

     

    금촌역 도착!


    숙소에 체크인하고 오자니 헤이리스 마감 시간이 간당간당했다. 미리 체크인할래도 프런트에선 전화를 받지도 않아서 결국 헤이리스로 직행했다. 금촌역에서 헤이리스 가는 버스 역시 배차도 길고 자주 오지 않는 편이다.

     

     

    # 02.

     

     

     


    분명 안내 방송에선 1번 게이트라고 해서 내렸는데 막상 내리고 보니 4번 게이트 앞이었다. 1번 게이트까지 900m를 더 걸어야 한다. 뭐 이런? 나 오늘 모네 볼 수 있는 거야?

    타지에서 발견한 옆 동네 지명. 괜히 반갑다.

     

    평일이라 그런지 황량하다.

     

    입구 근처 주차장에 서있는 멋들어진 나무 한 그루.

     

     

     

     

     

    모네, 향기를 만나다 展 : 네이버 통합검색

    '모네, 향기를 만나다 展'의 네이버 통합검색 결과입니다.

    search.naver.com

     

    드디어 헤이리스 입구.


    마감 1시간 20분 전에 간신히 도착한 헤이리스 입구. 8월 29일까지라고 알고 있는데 여기서 보니 또 8월 30일이라고 돼있다. 입구에는 있는 길냥이 보호소에 점박이가 늘어지게 누워 휴식 중이었다.

    지난 5월에 이어 두 번째 관람이었다.

     

    헤이리스란 의미부터 모네의 <수련>을 표방하는 듯.


    검색해서 보니까 클림트 모네, 반 고흐 등 명화를 테마로 한 향수 전시회는 수년 전부터 매해 이뤄졌었는데 화가별로 기획한 전시는 얼마 안 된듯하다.

    재관람이었고 어떤 커플 이외엔 사람도 거의 없었지만 섬유 향수 DIY 체험 패키지도 신청했기 때문에 시간이 좀 빠듯했다.

    전번엔 향수 DIY 키트를 온라인에서 판매했었던 걸로 기억했는데 연장하면서 바뀌었는지 더 이상 온라인숍에서 판매하지 않았고, 원 데이 조향 클래스는 당일 예약도 어려웠겠지만 우선 여비를 거진 탕진했다. 울고 싶다. 다시 온라인에서 재판매하면 월급 들어오자마자 덥석 구매할 텐데.

    그럼에도 아주 좋았다. 모네의 명작을 눈으로 볼뿐만 아니라 향도 맡고, 원작을 재현한 레플리카 작품이므로 손으로도 만질 수 있어서. 캔버스 위로 재현된 거친 붓 칠의 촉감이 선연하다.

    2층에는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중 백조가 흘러나오는데, 모네의 <수련>과 환상의 조합이다. 미각을 제외한 온 감각을 충족하는 공감각적 전시라 할 수 있겠다.

    모네 할아버지 발이 말렸다. 힝.

     

    8가지 시향 카드.


    시향 카드의 향기는 조향사가 그림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각각 직접 조향했다고 한다. 하나도 빠짐없이 각각 명화와 걸맞은 향기였다.

    시향 카드를 받고 1층부터 찬찬히 관람 시작.

     

    장미 조화 벽으로 장식된 계단과 다른 화가들의 명작들.

     

    각도에 따라 변신하는 고흐!

     

    2층 전시 초입.


    전시는 모네의 생애 주기를 순차적으로 이뤄지며 스토리텔링 형식이라 흥미롭다. 특히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아내이자 영혼의 뮤즈였던 카미유와의 사랑은 시공을 넘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고스란히 느껴진다.

    <기모노를 입은 여인>


    카미유가 일본의 기모노를 입은 서양인임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금발로 채색했다는 <기모노를 입은 여인>. 기모노 속 문양이 새삼 역동적이다.

    언제 봐도 마음이 아픈 <임종을 맞은 카미유> 속 모네의 서명.

     

    <양산 쓴 여인>


    아이와 함께 서있는 여인은 아들 장과 카미유이며, 베일에 가려진 여인은 모네의 두 번째 부인인 알라스 오슈데(Alice Hoschede)의 딸 수잔 오슈데(Susan Hoschede)이다.

    카미유 사후 인물화를 그리지 않던 모네가 다시 그린 인물화인 <양산 쓴 여인>은 카미유 사후 그녀를 잃은 슬픔으로 인물의 표정을 흐릿하게 표현했다는 가설이 있다.

    그런고로 얼굴이 흐릿한 <양산 쓴 여인>은 <임종을 맞은 카미유> 만큼이나 가슴이 저릿하다. 모네의 사랑도 절절하지만 평생 동안 보이지 않는 연적을 품어야 했을 두 번째 부인의 심정은 얼마나 애끓었을까 싶고.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은 지베르니 정원.

     

    이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련, 밤의 효과>.

     

    죽기 전엔 오랑주리에서 실본을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체험 패키지로 만든 섬유 향수.

     

    고생하는 J를 위해 구매한 <해돋이>.


    메인 베이스로 8번 <수련>을 선택했다. 모네의 작품 중 수련을 가장 좋아하기도 하지만 시향 패키지 중에서도 제일 마음이 끌렸다.

    스포이트로 샘플을 옮겨 담는데 수전증도 아니고 덜덜 떨렸다. 메인베이스(만다린, 그린 티, 아쿠아) 20g에다 추가하고 싶은 향 2가지씩 각각 스포이트로 세 방울씩, 그리고 항균제 64g(을 결국 오버했다.)을 넣어 완성했다. 똥손이라 많이 안 흘린 줄 알고 기뻐했는데… 조향사가 뚜껑을 닫아주려고 병을 들어 올리니 키친타월에 많이도 흘렸더란다.

    바로 사용 가능하지만 3-4일 더 숙성하길 권장한다고 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한 번 뿌려봤는데, 추가로 넣은 L로 시작한 향과(이름 기억 안 남) 화이트 머스크 향이 확실히 톡톡 튀어서 아쉽지만, 그래도 포근하니 시원한 메인 베이스의 향 강하게 나서 좋다.

    향수 DIY 키트도 꼭 온라인에서 재판매했으면 좋겠다! 아니면 조향 클래스를 좀 더 오래오래 했으면. 오래도록 품고 싶은 헤이리스의 수련향이다.

    출입구를 나서려는데 고양이가 문을 막고 있다.


    섬유 향수 DIY 체험까지 끝내고 나서려는데, 헤이리스에 자주 알짱거리는 녀석인지 출입문에 기대고 있었다. 다칠까 봐 선뜻 열지도 못하고 쭈뼛거리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태평하게 입을 쩍 벌리고 하품하더란다. 몇 번을 똑똑 노크해도 들은 체 만 체한다. 이 엉큼한 녀석.

    간신히 나가면서 보니 피하려는 기색도 없이 슬렁슬렁 몸을 놀리던 녀석은 길고양이 급식소 옆에다 아예 터를 잡고 웅크렸다. 묘팔자가 상팔자네.

    다른데 들렀다 갈까 하고 고민하다가 그냥 숙소로 향했다.


    카페라도 들르고 싶은데 여비가 거덜 나서 최대한 아껴야 했다. 식도락도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 솔직한 말로 여행은 원래 돈 쓰는 맛이니까.

    숙소까지 단 두 정거장 거린데 버스는 딱 한 대, 평균 배차가 40-50분이었다. 20분을 기다린 버스를 타려는데, 하필 동시에 진입한 앞 버스에 가려져서 버스 기사가 탑승하려던 나를 못 봤는지 그냥 쌩하니 지나가버렸다. 근처에 편의점 주인이 화들짝 놀랄 정도로 악! 소리가 절로 나왔다.

    다음 도착 예정이 38분 뒤였다. 콜택시를 불렀다. 역시나 5분도 채 안 걸렸다.

     

     

    # 03.

     

    엘리베이터 내부에 뜨악했던 외설 영화 포스터…


    거참, 입구에서 명화를 보고 기껏 감탄했다가 엘리베이터 타자마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주인장의 이상형이 헐벗은 서양녀인가 보다.

    객실에 짐을 풀고 인근에 바로 편의점이 있었던 어제와 달리 언덕배기에 온갖 모텔과 호텔만 즐비할 뿐인 그야말로 화려한 숙소 외벽의 조명과 길섶에 쓰르라미 무리를 품은 풀떼기만이 나를 감쌌다.

    배고파 죽겠는데 밥은 대체 어디서 먹어야 하나. 한 남자가 검은 봉지를 들고 오는 걸로 보아 분명 편의점이 있을 텐데, 느지막한 시간에 무턱대고 혼자 돌아다니기엔 겁이 났다. 동반자에게 전화를 걸며 최대한 밝은 길을 찾아 걸었다.

     

     

    # 04.

     

     


    건너편에 깡깡 소리가 울려 퍼지는 야구 연습장(으로 추정되는 곳)과 유아숲 체험장과 수풀떼기 외엔 아무것도 안 보이는 외진 산길이었다. 하릴없이 걷고 걷는데 정말 거짓말같이 눈앞에 퀴진 하나가 떡 하니 나타났다.

    기적처럼 나타난 퀴진, <Bunkerhill>.

     

    음식 사진 잘 안 찍는데 이번엔 안 찍을 수가 없다.


    에어컨 빵빵하지, 오빠들… 아니, 종업원들은 잘 생겼지, 인테리어는 분위기 깡패지. 외딴 숙박촌이 무리 진 산골 한복판에 구세주를 만났다. 아사해서 사후세계에 온 건가? 낙원에 오기엔 착하게 살진 않았는데.

    다만 궁상맞은 청춘이 혼밥보다 더 무서웠던 건 가격이었다. 수중에 남은 돈은 얼마 없고 전자 출입 명부 QR 코드 인증을 안내하는 말에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한 뒤 메뉴판을 덥석 집어 들었다. 크림 파스타 세트가 15라는데 이게 만 5천 원인지 15만 원인지 긴가민가했다. 돈도 돈이지만 아사 직전이었다. 주문했다.

    다행히 만 5천 원이라서 안도했다(주문받는 오빠… 아니, 계산원의 목소리마저 잘생겼다.). 순간적으로 경제관념이 둔감해진 탓에 저렴하게 느껴졌다. 갈증 나서 함께 주문했던 레모네이드는 6천5백 원이었다. 그래, 9천5백 원 아닌 게 어디야.

    사방엔 어제 세미원에서처럼 죄 가족 단위 아니면 커플 무리였다. 꽃미남 오빠들… 아니, 종업원들마저 자꾸 내 쪽을 흘깃 쳐다보는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 혼자 앉아서? 아니면 입고 온 치마가 너무 길어서? 모쪼록 배고팠던 나는 체면이고 뭐고 파스타 세트를 허겁지겁 흡입했다.

    배를 채우고 나니 잠시 잊고 있던 현타가 다시금 밀려왔다.

    그 와중에 창문 너머 하늘이 예뻤다.

     

    건물 외관.


    내가 허깨비를 본 건 아니겠지 싶어 인터넷에서 검색하고 카드 내역도 조회해 봤다. 다행히 실재하는 식당이다. 낮에 봤던 실재론에 관한 갑론을박이 떠올랐지만, 암튼 나는 돈을 주고 밥을 먹었다. 이건 실재이고 사실이다.

     

     

    # 05.

     

    다시 화려한 쓰르라미 소리에 감싸이러 간다.


    동일 가격임에도 어제보다 낡고 투박한 내부였지만 속속들이 보면 다 거기서 거기다. 함에 꽂으면 객실 내 전기가 돌아가는 도어록 전용 카드키, 룸서비스용 음료수, 통합형 충전기, 가운과 수건, 일회용 세안키트, 객실 내 전기와 조명을 조정할 수 있는 통합형 리모컨, 그리고 성인 방송 채널(므흣).

    확실히 우리나라 치안은 좋은 편임을 여실히 느꼈다. 물론 해지자마자 숙소로 튀어가긴 했어도 이틀 동안 짐을 한 보따리를 바리바리 싸 들고 치마 펄럭거리며 혼자 남으로 갔다 북으로 갔다 혼자 잘도 싸돌아다녔다.

    그럼에도 컴컴하고 으슥할수록 노골적인 시선이 드러나는 만큼 웬만해선 밤중에 외출은 삼가야겠다.

    모쪼록 여행 내내 쪼들리는 여비와의 사투였지만, 또 여행이라기엔 실속 없는 실수투성이지만. 간간이 잊지 못할 장면을 눈에 담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2021년 08월 03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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