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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도 마음이 죽은 채 긴 밤을 걷고 있나요
    기록/일기 2025. 3. 8. 19:10

    # 01.

    이런 한낮의 여유가 좋다.




    # 02.

    눈길을 잡아끄는 도서명.



    # 03.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배가 여기 있네.



    # 04.

    어쩌다 보니 U와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자리를 가졌다. 요 며칠 깜깜무소식이던 그가 300만 원어치 실적을 실패한 하소연을 접하다 보니 오죽하면 (딱히 친하지도 않은) 나한테까지 이러는가 싶어 짠했다. 텍스트만으론 오롯이 전하거나 채울 수 없는 상실감을 대면소통으로 덜어주고 싶기도 했고, 내심 나 역시 술이 고팠다.

    호언장담과 달리 순탄치 않은 돌봄 연계였다. 돌봄마다 피곤했던 자영의 연계거부를 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가장 먼저 바로 수락함이 다소 허탈했다. 그 뒤로 두 시간 단위로만 허용되는 긴급돌봄서비스라 어떻게든 여덟 시 반에 배정받기 위한 신청과 취소를 거듭한 끝에 간신히 구한 돌봄선생에게 양해를 구해서 U의 퇴근시간에 맞출 수 있었다.

    그렇게 험난한 돌봄신청 후, 약속시간보다 한참 늦어진 퇴근에 20분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언짢은 심중을 드러내기엔 그는 무척 피곤해 보였고, 수시로 시간을 살피며 두서없이 산만하게 구시렁거리는 와중에도 내 식사와 보행 중 안전을 챙기는 그가 안쓰러웠다. 이런 내 진정 어린 걱정에 반해 결국 나 역시 U에게 다 잡은 물고기에 불과함을 인식하니 한편으론 쓸쓸했다.

    그럴 수 있다면서 자꾸만 실패를 복기하는 U에게, 내가 그와 조금 더 친했다면 손을 감싸 쥐든 포옹을 하든 온기를 함께 전해주면서 그만 오늘의 실패는 떨쳐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어두운 동굴에서 벗어나 다시 희미하게 발하는 빛을 향해 나아가라고… 아니, 나아가'자'고. 함께가 관건이었다. 나더러 '내' 수강생이라고 일컫듯 내게도 U는 '내' 멘토이기에.

    하지만 나는 (영업에 성공한) 고객 1에 불과하므로 그저 묵묵하게 곁을 지킬 뿐이었다.

    U가 자각하든지 말든지 나는 U를 마냥 기다리고, 보폭을 맞추고, 들어주었다. 한 때 다른 누군가에겐 일상적이다시피 숱했던 익숙함에도, 솔직히 U에겐 친애만으론 기껍지만은 않았다. 새삼스럽게도 예의 그 다른 누군가가 내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깨달았고, U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그의 바람이 났다던 전 여친이 얼마나 외로웠을지도 공감했다. 연애를 하기엔 U의 도태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도 강박적이라 연애에 할애할 시간이 부족했을 것이다.

    다만 지금과 같은 강박성이 연애 중에도 지속 중이란 전제하에 그렇다는 것이고, 어쩌면 이별로 인한 후유증인지 모르겠다. 만약 후자라면 그건 그것대로 안타깝다. 동질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나는 U에게 늘 쫓기듯 사는 것 같아 보인다며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그는, 평범해지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가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아픔을 가졌는지 전부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먹먹했다. 평범은 나 또한 지극히 바라던 바이기에. 아까 사내 도서관에서 이끌렸던 책 제목이 떠올랐다. 그의 밤은 언제부터였을까. 그리고 나의 밤은 언제부터였을까. 이 긴긴밤의 끝과 아침의 시작은 언제 올까.

    2차로 코인노래방에서 세 곡 씩 부른 뒤, 무려 새벽에도 예정된 일정이 있던 그는 그렇게 번갯불에 콩궈먹듯 떠났다.


    # 05.

    3차 혼술 안주.


    술김에 고마워요, 한 마디 보낸 메일이 곧장 수신불가로 반송되자 우스웠다. 흑역사를 갱신하느니 차라리 다행이지 싶었다.

    그러고 나서, 나더러 고맙다고 메시지 보낸 U에게 무슨무슨 말을 했더라. 나야말로 시간 내줘서 고마워요. 힘내요. 힘들어. 있는 그대로 괜찮아요. 이렇게 두서없는 일언반구를 써 보내고서는 곧장 채팅방 나가기를 눌렀다. 안읽씹이든 읽씹이든 회답하지 않을 것이 분명한 그의 무심함을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아서.


    D-5028⭐️
    2025년 03월 07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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