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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존감 수업>
    후기/책 2024. 10. 5. 18:53
     
    자존감 수업
    『자존감 수업』은 자존감 전문가이자 정신과 의사인 윤홍균 원장이 2년 넘게 심혈을 기울여 쓴 책으로, 자존감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친절하게 알려주고, 자존감을 끌어올리는 실질적인 방법을 알려준다. 높은 자존감을 갖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는 사람, 낮은 자존감 때문에 내면의 불화와 갈등을 겪고 있는 이들이 건강한 자존감을 회복하도록 돕는다. 저자는 먼저 자존감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일, 사람, 사랑, 관계맺기를 2~3장에 걸쳐 비중있게 다룬다. ‘사랑받을 자격을 의심하는 사람’ ‘끊임없이 묻고 확인하는 사랑’ ‘이별이 무서워 떠나지 못하는 사랑’ ‘미움받을까 두려워 자신을 포장하는 사랑’ 등 사랑의 패턴과 자존감의 연관성을 분석하며, 자존감이 인간관계에 미치는 영향과 방식도 집중 점검한다. 특히 저자는 취약한 환경에서 자존감에 상처를 입는 사람들을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현실을 바꿀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처한 환경 속에서 자존감을 지키고 회복하는 현실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한 예로 직장인이라면 직장 만족도, 직업 만족도, 자기 만족도를 명확하게 구분함으로써 자존감을 지켜내라고 권한다.
    저자
    윤홍균
    출판
    심플라이프
    출판일
    2016.09.01

     

    나는 일기나 브런치 발행글 등 지속적으로 밝혔듯 행복은 결코 소유할 수 없는 개념으로 길 가다 우연히 발견한 들꽃처럼 부유하는 우연의 산물이라는 개똥철학 주관이 뚜렷한고로 행복 자체는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필연적인 개념이기보다는, 조각보처럼 모으고 모인 짜임새라고 생각하는 나는 ‘건강해지자’, ‘평온해지자’는 몰라도 ‘행복해지자’는 표현은 역시 부자연스럽다.

     

    해서 ‘행복이란 결국 높은 자존감에서 비롯된다’는 서론에서는 어쩐지 부조리하고 반감이 들었다. 행복의 개념을 어떻게 자존감 정도와 연관 지어질 수가 있을까.

     

    아무래도 나같이 비관적이고 염세주의자는 자기애라는 표현 자체가 왠지 모르게 오글거리지만, 누군가에게 내 전부를 내걸지 않고도  진정한 의미의 홀로 서기 위한 시행착오를 거쳐야겠다는 필요성으로 이 책을 펼쳤다.

     

    정신과 상담의로서 자존감을 회복하는 여러 가지 노하우와 감정을 다루는 방법(특히 사랑)을 코칭해 주고 독자에게 당신은 세상 유일한 존재임을 반복적으로 위로해 주는, 읽으면 읽을수록 인상 깊은 문장이 자주 보이고 가독성도 좋은 친절한 저서다.

     

    • 키워드: 자존감, 자기애, 회복
    • 한 줄 평: 자존감과 자기애의 상관관계와 회복 방법을 코칭해 주는 친절한 설명서.

     

    우리는 모두 외떨어진 섬처럼, 각자의 고민을 안고 외로워한다. 어쩌면 사통팔달로 연결되어 있되 꽉 막힌 고립의 시대인지도 모르겠다.
    바야흐로 셀프로 자존감을 지켜야 하는 시대다. 행복해지기 위한 온갖 방법과 글귀가 난무하지만 진짜 행복은 튼튼한 자존감에서 나온다. 건강한 자존감이야말로 요즘처럼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다.
    자신을 사랑할 수 없으면 퍽 불쾌한 기분이 든다. 마치 맘에 들지 않는 쌍둥이 형제와 꼭 붙어 다니는 것과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야단맞는 느낌이고 매사 비관적이 된다.
    조금 편하게 살고 싶다면 평소 자신에게 괜찮아라는 말을 자주 해줘야 한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남들과 경쟁하고, 비교하고, 비난당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스스로를 이상하고 부족한 사람으로 매도해 왔다. 우리의 자아는 억울함과 슬픔에 빠져 있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위로를 해주어야 한다.
    집착은 병이다. 긴 병에 효자 없듯 집착은 굳건한 사랑도 떠나게 한다. 집착 때문에 사랑이 떠나면 자존감은 더 떨어진다. 거봐. 또 떠났잖아. 역시 날 사랑하지 않은 거야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자존감이 낮기 때문에 집착하고, 집착해서 자존감이 낮아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사랑을 한다는 건 거기서 얻는 행복만큼이나 큰 에너지를 요하는 감정이다. 이때 그가 진짜 나를 사랑하는가, 내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인가 하는 고민을 하지 않으면 그만큼 에너지 소모를 줄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건강한 관계를 만드는 데 쓰인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사랑을 쉽게 끝내지 못한다. 자신이 원하는 사랑이 아니어도 참고 견딘다. 너덜너덜 상처를 입고 우울증에 빠져도 이별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가끔 듣는 사랑한다는 말이나 근거 없는 느낌에 기대어 심약한 사랑을 유지한다. 이 사람 말고는 아무 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란 생각, 이별을 감당하지 못할 거야란 생각은 전쟁 같은 사랑일지언정 완전히 끝나지 않도록 강력한 방어막을 친다. 이렇게라도 사랑하는 것 말고는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 무릎을 꿇는다.
    자신의 가치란 반드시 누구에게 인정받아야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인생을 망친 자기 존재에 만족할 인간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자신의 가치를 되찾기 위한 격렬한 몸부림이었다고 쳐도 외도는 합리화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돈을 벌고 싶다고 카지노에 가는 것과 같다. 도박장에 있는 그 많은 돈은 내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외도를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고자 하는 것 자체가 서글픈 일이다.
    어떤 경험 때문에 괴로움에 사로잡혀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감정적인 문제를 겪고 있지 않은지 살펴봐야 한다. 나쁜 기억 때문에 우울한 게 아니라, 우울하기 때문에 나쁜 기억만 붙잡고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동안 너무 과거에 집중했던 사람들은 바뀌지 못할 이유에 대해 생각하느라 현재나 미래를 생각하지 못한다. 이제는 목표를 정해야 한다. 시제는 미래여야 하고 긍정형이어야 하며 감정보다는 행동과 관련된 수칙이 좋다.
    만약 내가 과거 경험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현재 어떻게 살고 있을지 상상해 보자. 그리고 그 모습을 위한 목표를 미래형, 긍정형, 행동형으로 적어보자.
    중요한 것은, 남의 행복만을 위해서 하는 행동은 상대에게도 부담을 주고 결국은 배신감과 서운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봉사를 하더라도 자신을 위한 봉사여야 하고, 자녀를 사랑할 때도 나의 행복을 추구하는 수준에서 이뤄져야 후회나 뒤끝이 없다.
    인간이 원래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길 바란다. 그래야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고, 진심으로 타인을 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정합 때는 세 가지 기준을 만족시키는 문장으로 적어야 한다.
    첫째, 부정형 문장이 아닌 긍정형으로
    둘째, 타인이 주어가 아니라 가 주어인 주체형으로
    셋째, 과거 시점이 아닌, 미래 시점으로 적어야 한다.
    상대가 문제 있는 사람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 있는 사람에게 의존하면서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상대 방 탓만 하는 삶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정신의학자들은 의존성이 상대방의 나르시시즘을 깨운다고 설명한다. 무턱대고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높아지는 경우 본인의 능력과 가치가 순간적으로 높아 보인다. 혹은 반대로 자신의 남아 있는 자원이라도 보호해야 한다는 자기 방어적 욕구가 올라간다. 이 두 가지가 혼재하는 나르시시즘 성향이 유발된다는 이론이다. 한 사람이 의존적이 되면 상대방은 나르시시스트가 된다. 자신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여 의존적인 사람을 도와주면서 둘의 공생 관계는 시작된다.
    상대의 나르시시즘적인 면은 다름 아닌 자신의 의존성이 키운 것이다. 지친 나르시시스트가 내뱉는 이별의 말에 상처를 받지만 사실 그 뿌리는 자신의 의존성이다.
    누구에게나 의존성은 있으며, 단지 누구에게 어떻게 얼마만큼 의존하느냐가 문제일 뿐인데도 의존 자체를 나쁘다고 치부해 버려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진찰받는 것도, 사람을 사귀는 것도, 종교 활동을 하는 것도 꺼리게 된다. 게다가 자신이 의존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계속 나르시시스트에게 이끌리거나, 평범한 사람도 나르시시스트로 만들면서 상처받기를 자초한다.
    어떤 감정이 행동을 지배하느냐에 따라 자존감의 높고 낮음도 결정된다. 그런 의미에서 감정 조절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길이 크게 갈린다.
    감정 조절을 못하는 사람들은 억압과 폭발만 반복한다… 반면 감정을 잘 조절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감정을 얼마나 느끼며 어떤 영향을 끼칠지 인식하고 있다. 또한 그 감정이 지금 눈앞의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누구나 격한 감정을 느낄 때가 있다. 다만 누구는 감정이 식기를 기다리거나 표 나지 않게 조절할 줄 알고, 누구는 모든 사람들이 알게끔 행동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감정을 조절하는 행위는 자동차 운전과도 같다. 멋진 차를 가졌어도 운전을 못하거나 차가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사건과 생각, 행동을 감정과 구분하는 행위는 마음을 안정시킨다.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든지 이유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뒤엉켜 있어 답답하던 것이 풀려 눈앞에 드러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리고 구체적인 대책을 세우기도 좋다.
    공허함은 그 자체로 부정적 감정은 아니다. 오히려 마음을 비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나 무념무상에 도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많다… 감정적으로 지친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있고 싶다라는 말을 한다. 이처럼 공허함은 생각이 비워졌을 때 따라오는 감정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공허함을 괴롭다고 받아들인다. 상처가 깊어서 모든 것을 잊고 싶었고 정작 자신이 도달하고 싶어 하는 상태가 됐는데 오히려 허무함을 느낀다. 왜일까? 간단하다.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감정이 공허함인 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돈을 벌거나 성과를 내는 것에는 목표를 정해놓지만 감정의 목표는 구체화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무작정 지금보다 나은 감정이었으면 하고 생각할 뿐이다.
    따라서 무의식에서는 공허함을 원했으면서도 진짜 공허함이 느껴지면 자신이 목표했던 감정에 도달한 것을 깨닫지 못한다.
    핵심 감정은 여러 개일 수도 있고 매일 변할 수도 있다. 심지어 핵심 감정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릴 때의 꿈 혹은 장래희망처럼 보면 된다… 꿈을 정했다고 해서, 또 커가면서 그 꿈이 변한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다. 꿈이 없다고 해서 나쁜 것도 아니다. 그러니 핵심 감정을 반드시 찾아내야겠다고 마음먹기보다는 편안하게 생각을 정리해 보길 권한다. 나의 핵심 감정은 무엇일까?하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뇌는 조금 더 건강해진다.
    단번에 자신과 사랑에 빠지기보다는 전초 단계를 밟는 것이 현명하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불안해하고 무엇을 할 때 행복하며 무슨 선물을 받고 싶은지 등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실망감이 반복되면 슬픔이 된다. 실망감이 마음 안에 자리를 잡아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슬픔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아주 쉽다. 실망하는 이유와 정반대로 하면 된다. 기대를 낮추거나 미래를 생각하지 않으면 된다.
    변화의 기본은 늘 want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원치 않는 것에 관심을 끄고 싶어 하면서도 무관심 상태를 두려워한다. 관심을 줄이고 머릿속이 차가워지면 냉기가 오래가 무기력(no volition, 의욕 없음) 상태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공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뇌에는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 주는 자동 제어장치가 있다. 따라서 뜨거운 감정에 사로잡혔을 때 무관심을 투여한다고 해서 쉽게 무기력해지지는 않는다.
    화가 나 지나치게 뜨거워져 있을 땐 차가운 감정을 부어야 하고, 무기력이나 냉소에 빠져있을 땐 따뜻한 감정으로 다시 심장을 뛰게 해야 한다… 우리가 무심코 하는 모든 행위들이 감정의 온도와 연관이 있다. 무엇을 할 때 감정의 온도가 높아지고 무엇을 할 때 낮아지는지 알고 나면 감정을 조절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감정이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감정은 내가 아니라 내가 사용할 에너지일 뿐이다. 인생이라는 길에 자전거를 타고 간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어떤 감정을 만나는가에 따라 자전거의 속도가 결정된다.
    화가 나거나 불안한 날은 빨리 가고 여기에 냉소를 끼얹으면 천천히 간다. 그런데 자전거는 속도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핸들을 어느 쪽으로 꺾을지가 더 중요하다. 이 판단은 이성이 한다. 속도 조절을 위해 브레이크를 꼭 잡아야겠지만 속도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어차피 오르막을 만나면 속도는 줄어들고, 내리막을 만나면 속도를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다. 감정은 중요하지만 절대적 요소는 아니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 줄 알면 된다.
    막상 자신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게 되면 문제는 대개 해결된다. 막연하고 모호한 불안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불안으로 변환하는 방법이다. 해결 가능한 불안이면 해결책을 세우면 되고, 불가능하다면 포기하면 된다.
    4대 두려움: 죽음, 파산, 이별, 매력 상실
    지금 좌절하고 있다면,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내가 진정 두려워하 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말이다. 연인과 헤어진 후 좌절하고 있다면, 그래서 어떻게 될 것 같은지 물어봐야 한다. 몸이 아파서 좌절하고 있다면, 아파서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그다음엔 어떻게 될 것 같은지 자문해봐야 한다.
    열등감은 폭발력이 강한 감정이다. 상대를 자극하고 싶으면 그 사람이 갖지 못한 것을 들먹여 열등감을 터뜨리면 된다. 어쩌면 우리는 저마다 열등감이라는 폭탄을 가슴속에 하나씩 품고 사는지도 모른다.
    열등감은 세 가지 생각이 섞인 혼합물이다. 무능감, 자격지심, 피해의식이 섞여 있다 보니 덩어리가 크다. 열등감이라는 덩어리는 잔뜩 부푼 풍선과도 같아, 눌리면 오래 못 버티고 터져버린다.
    열등감을 근본적으로 버리려면 사람이든 무엇이든 우월함과 열등함, 좋고 나쁨으로 구분하는 습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예민함을 떨치려면 자신과 타인을 구분하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 타인의 범위는 무척 넓다. 자신을 제외한 사람은 모두 타인이다. 가족도 남이고, 친구도, 회사 동료도 당연히 남이다.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남의 일을 남의 일로 남겨두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남이 한 얘기나 행동을 곱씹고, 내가 피해봤다고 생각하면서 행복하기란 불가능하다.
    물론 남의 모든 일에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세상에는 협동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하는 관계에서는 적절한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 행복을 주고받을 수 있다.
    중요한 건, 남의 감정은 그 사람에게 맡겨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남에게 관심을 갖고 도와주고 싶다면 그렇게 하자. 하지만 그 사람의 감정을 바꾸려 들거나 내 것으로 끌어오지는 말자. 남이 화가 났든, 의심을 보이든, 그 사람의 일일 뿐이다. 상대가 화를 낸다고 같이 화를 낼 필요도 없고, 거기에 휘둘리거나 억눌릴 필요도 없다. 남의 감정은 남의 것이다.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좀 어떤가. 나에게 중요하지 않거나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이 나를 뒤흔들게 할 필요가 있는가 말이다. 인간관계에 예민해질 때면 그 사람하고 사이가 좀 나빠지면 어때? 하고 내뱉어 보자. 건강 문제에 지나치게 예민하다면 "좀 아프면 어때? 누구나 지병. 하나씩은 갖고 살아가잖아'라고 해보자. 그 말만으로도 예민함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다.
    특히 한 가지를 계속 생각하는 걸 집착이라고 부르는데, 집착을 없애려면 그게 뭐라고라고 중얼거려 보길 바란다… 마음을 휘어잡고 있던 무거운 생각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변화는 단 한 번의 결심이나 시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되는 듯하다가 안 되고, 안 될 듯하다가 되기를 반복한다. 나도 모르게 다시 열등감에 빠지거나, 나쁜 습관에 다시 발 들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중요한 것은 실패로 단정 짓지 않는 것이다. 무너지면 쌓고 또 쌓기를 반복해야 마음이 완성될 수 있다.
    마음에 받은 상처는 종종 흔적을 남긴다. 시간이 약이라고 하지만, 덜 아문 자리가 불쑥불쑥 아픔을 준다. 잊을 만하면 자꾸 그 일이 떠올라 괴롭다. 겉은 아물었지만 속은 곪아 있어서 갈수록 더 아픈 경우도 있다… 지나간 일이지만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자꾸 덧나고 고통을 준다.
    건드렸을 때 유독 큰 고통을 느끼는 부분, 이를 마음의 급소라고 한다.
    자존감 회복이라는 인생의 변화 앞에서 우리의 마음은 복잡하다. 간절히 원하면서도 원치 않는 마음, 회복으로 향하지만 한쪽에서는 반대 행동을 하는 모습, 변화를 원하면서 한편으로 저항한다. 우리에게 어떤 저항이 있는지 인식하고 극복해야 진정한 회복으로 나아갈 수 있다.
    회복 과정에서 저항을 들여다보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사실, 저항이 생기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물체를 옮길 때 발생하는 마찰력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는 모두 불행한 나에서 행복한 나로 옮아가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 위치에서 저 위치로 옳아 가기 위해서는 마찰력, 중력을 극복해야만 한다.
    우리를 계속 제자리에 머무르게 하려는 힘은 늘 있다. 나에겐 저항이 없다며 억누르기보다는, 어떤 문제 때문에 마찰력을 더 크게 느끼는지, 어떻게 해야 저항을 쉽게 극복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편이 더 현실적인 방식이다.
    실질적인 변화를 느끼고 싶다면 계속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의 저항을 극복하지 못한 채 안고 가야 할 때도 있다. 벽에 부딪히다 보면 근력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멈추지 않고 그냥 계속하기, 그것이 변화를 앞당긴다.
    비난을 당할 때는 자신이 비난당하는 상황임을 빨리 알아차려야 한다.
    왜 그래야 할까? 비난은 우리 인생에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눈물 쏙 빠지게 혼나고 난 뒤에 열정과 승부욕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건 울면서 감정이 배출되어 생기는 정화(ventilation)의 효과이지 비난의 효과가 아니다
    비난은 투사일 뿐이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남 탓을 하는 행동을 말한다. 투사는 미숙한 방어기제에 속한다. 승화나 유머와는 달리, 문제를 일으키고 생산적 활동으로 이어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기대하는 만큼 실망하고, 실망감을 안겨준 사람에게 실망감을 해소해 주길 기대한다.
    중요한 것은 기대와 실망이 악순환된다는 점이다. 기대가 클수록 실망이 크고, 실망이 클수록 기대는 커진다. 몇 번 반복하다 포기를 해야 하는데 보통 그러질 못한다. 악순환의 늪에 빠지면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강화된다… 기대했다가 바뀌지 않으면 그만큼 크게 실망한다.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몇 가지 생각을 버려야 한다:
    1. 근본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
    2. 남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
    3. 성격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
    겉으로 드러난 문제와 이면의 문제는 서로 악순환을 이룬다…  원인이 결과고 결과가 원인이다. 자책을 하다 보면 나를 이렇게 만든 타인을 탓하게 되고, 그렇게 핑계를 대는 나를 다시 탓하게 된다. 자책과 타책(비난이나 투사)이 반복되는 셈이다.
    반복은 에너지를 만든다. 같은 현상이 반복되면 점차 강화된다. 나중엔 멈추고 싶어도 관성 때문에 계속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어느 쪽을 끊어도 상관없다.
    끊으려면 자신이 어떤 순환을 하고 있는지 알아봐야 한다.
    자존감이 낮다는 추상적인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원망에서 벗어나기, 과거를 용서하기 같은 구체적인 방향을 세우는 게 악순환의 고리를 벗어나기에 좋다.
    사랑은 누명을 썼다. 실제 사랑은 아무것도 파괴하지 않는다. 사랑받고 아낌 받고, 소중하게 다루어진 아이들의 자아가 건강하다. 나르시시스트는 애정 결핍의 산물이다. 과잉보호는 우리 애는 약해라는 무시의 결과다. 무조건적이고 진정한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사랑스럽게 성장한다. 그 사실을 믿어야 한다.
    사랑 앞에선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없다. 사랑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없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면 된다.
    우리는 완전한 사랑을 꿈꾼다… 왜 나는 사랑받지 못하나? 그러면서 자기연민에 빠지곤 한다.
    그 사랑을 우리가 하면 된다. 더 이상 사랑을 할지 말지 망설이거나 양가감정에 빠지지 말길 바란다.
    괜찮아. 누구나 그래, 최선을 다했잖아. 지금도 멋져, 사랑해. 무슨 일이 있어도 네가 사랑스럽다는 걸 잊지 마 등의 얘기를 할 것 같다고 한다.
    이 말들이 바로 우리 뇌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이다. 이 말을 듣지 못해 우리의 자존감이 성장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나가 주는 메시지를 들어야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자존감은 서서히 회복되고 성장한다.
    사랑하는 나가 보내는 메시지를 들으려면, 다그치는 나가 쳐놓은 장벽을 헐겁게 만들어놓아야 한다. 그래서 우선은 이것을 설명하려 한다. 굳어버린 자존감의 벽을 허무는 방법 말이다.
    스스로 결정하는 일이 거의 없거나 큰 의미 없는 결정이라면 자존감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자기 인생에서 자기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으니, 자존(self-existense)의 바탕이 사라지는 셈이다. 이런 사람이 자존감을 끌어올리려면,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정을 존중하는 법을 훈련해야 한다.
    자존감은 감정적으로는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이성적으로는 스스로 결정하고 자신의 결정을 존중하는 능력이다.
    옳은 결정이나 틀린 결정은 없다. 어떤 쪽이 더 좋은 결정이었는지 알 수 있는 결정 또한 없다. 결정에서 명확히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범위와 시간이다. 대부분 나에 관한 일을 결정하므로 결정 범위는 로 제한된다. 따라서 남은 건 시간뿐이다… 오래 고민한다고 해서 그만큼 현명한 답이 찾아지는 건 아니다. 그냥 오래 걸릴 뿐이다.
    자존감을 높이는 결정법: 
    1. 스스로 결정하기.
    2. 결정을 따르기
    3. 결과가 나쁘면 미래형 후회하기.
    4. 결과가 좋으면 타인에게 감사하기.
    자기 결정을 돕는 다섯 가지 질문:
    A. 여러 고민 중 내가 할 고민은 무엇인가? (남의 문제 배제하기)
    B 무엇을 결정해야 하는가? (감정 배제하기)
    C. 어떤 것과 어떤 것 사이의 선택인가? (자신을 갈림길에 놓기)
    D. 이 결정을 언제까지 내려야 하나? (시간 제한하기)
    E. 이 결정의 유효성은 언제까지인가? (결정 유효 기간 정하기)
    애초 미래는 불확실한 것이기에 확신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어떤 해결책이든 결국은 현재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자기확신이든 자기최면이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불안을 해소하지만 결국 현실로 돌아온다.
    과거에 집착하면 후회스럽고, 미래에 몰입하면 혼란스럽다. 과거는 되돌릴 수가 없으니 답답하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 모른다. 그것이 과거와 미래의 본질이다. 건강한 사람의 머릿속엔 과거, 현재, 미래의 비중이 비슷하거나 현재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자존감이 약한 사람은 과거나 미래 문제에 편중되어 있다.
    문제 해결은 현재에 더 집중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정신과 의사들이 here and now라고 부르는 원칙이다. 지나간 문제나 앞으로 닥칠 문제를 생각하지 말고 지금 당장 할 일에 집중하라는 것. 이는 새로운 습관을 들이는 과정이다
    뇌를 행복하게 하는 세 가지 행동: 걷기, 표정 짓기, 혼잣말하기. 이 세 가지를 염두에 두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이 세 가지 행동을 할 때 활발하게 기능한다. 뇌가 가장 활발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일 때 자존감을 향상하면 변화가 이루어진다. 소리 지르기, 물건 때려 부수기, 남 공격하기는 다른 동물들도 할 수 있는 행동이다. 그렇게 행동해서는 뇌 건강을 되찾을 수 없다. 인간답게, 세련되게 살자.
    지금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슬픈 사자의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중심에 서 있고 싶고, 가족은 나만 믿고 있는데 알고 보니 세상엔 우리를 위협하는 것 투성이다. 지금도 힘겨운데 매번 전력질주를 해야 하고, 누굴 앞질러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지금은 잠시 고된 육아와 생활 전선에서 지쳐가지만, 우리는 모두 사자보다 멋지고 뛰어난 왕이다. 가족에겐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아들딸이자 부모, 배우자이고, 많은 위기를 견뎌낸 전사이자 꿋꿋하게 삶을 지켜낸 영웅이다. 가끔은 예기치 못한 공격에 중심을 잃기도 하고, 슬픔과 절망 속에서 울부짖기도 하겠지만 왕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불 꺼진 방 안에서 숨 죽여 울어도 괜찮다. 약해서가 아니다. 인간이라 그렇다.
    어떤 순간에도 잊지 말자. 당신은 밀림의 왕이다. 세상의 중심이다.
    당신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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