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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후기/책 2024. 10. 5. 18:28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이 《키스 앤 텔》이후 21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소설과 에세이가 절묘하게 만난 이 소설은 결혼한 한 커플의 삶을 통해 일상의 범주에 들어온 사랑에 대해 통찰한다. 영원을 약속한 그 후, 낭만주의에서 현실주의로의 이행을 특유의 지적 위트와 섬세한 통찰력으로 생생하게 그려낸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평생을 함께할 확신이 드는 사람을 만났는데도 어째서 우리의 사랑에는 위기가 빈번하고, 더 크게 파멸을 맞기도 하는 걸까. 저자는 이 작품에서 사랑은 열렬한 감정이라기보다 기술이라는 말로 응축된 유연한 사랑의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두 주인공 라비와 커스틴의 생활을 따라가며 점차 섹스의 스릴을 잃고, 함께하는 기쁨이 혼자일 필요성에 자리를 빼앗기고, 육아에 시달리고, 외도의 유혹에 흔들리는 모습 등 자신의 사랑에도 찾아올 수 있는 균열의 순간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케아에 컵을 사러 갔다가 의견 충돌로 빈손으로 돌아오며 ‘이걸 어떻게 평생 견디고 살지?’라고 맨 처음으로 함께하는 삶에 의문을 던진 두 사람의 결혼의 전 과정을 예행하듯 일상의 면면들에 주목하고, 그 안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사랑의 담론들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단순히 몇 달, 몇 년이 아닌 수십 년에 걸쳐 사랑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본다. 저자는 그런 순간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개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랑과 결혼에 대한 잘못된 통념이며, 그러한 통념으로부터 벗어날 때 비관적인 미래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저자
    알랭 드 보통
    출판
    은행나무
    출판일
    2016.08.25

     

    메인 플롯인 소설에서 중간중간 저자의 성찰이 담긴 견해(내지는 애착 이론에 대한 설명 등)이 간헐적으로 뒤바뀌는 서술 방식이 (저자의 다른 책을 읽어보지 못해서 본래 스타일인진 모르겠지만) 너무 자주 반복되다 보니 종종 집중이 깨지면서 흐름을 놓친 점이 다소 아쉽지만 사랑과 결혼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두루 보여주는 스토리텔링이 좋아서 두 어번은 읽었다. 

     

    또한 통상 낭만적 연애를 표방하는 류의 문학은 썸에서 연애까지의 과정 내지는 절절한 연애 끝에 결혼식을 올리면서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식의 결말로 사랑 자체에만 초점을 둔다면, 이 책은 제목에서처럼 본전이 결혼 이후며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결혼한 이후 지극히 현실적인 일상과 반복되는 갈등 통해 겪는 가정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서사적으로 풀어간 점에서 크게 공감했다.

     

    어쩌면 연인 또는 부부의 애착은 (각자 성향과 애착 유형에 따라 다르겠지만) 상대방과 내가 각자 몇십 년을 전혀 다르게 살아왔다는 인식을 종종 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다름을 받아들이면 좀 더 수월해질 것임을 알면서도 갈등하는 이유는 유아기적 애착 형성에서도 언급되는 나와 상대방 간의 분리가 애정이라는 명목으로 분별을 잃기 때문이다.

     

    모든 대인관계가 그렇듯 부부관계에서도 역시 존중과 수용이 전제되어야 함은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결혼에서의 낭만과 현실은 마냥 동떨어지거나 분리된 개념이 아닌, 의문과 고난의 연속인 인생이란 여정을 지치지 않게 할 상보적인 동력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자신과도 그렇듯 타인과의 조율과 타협은 당연히 쉽지 않다. 그렇기에 사랑의 지속성은 그저 감정 자체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차츰 숙련도를 높여야 할 상호작용의 기술임을 저자는 거듭 강조한다. 

     

    아직 미혼이라면 막연하기만 할 결혼과 가정관 정립에 도움을 줄 책이다(나야말로 결혼 전에 접해서 읽었으면 좋았을 테지만 초판본 발행 일자가 이미 둘째 돌 무렵이자 셋째를 임신 중이었다는 웃지 못할 TMI.). 하지만 본문 중에 주인공인 라비 칸도 결국 결혼한 지 17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자각했듯, 결국 진정한 의미의 결혼이란 예식부터가 아닌 상대를 향한 오롯한 애정과 수용을 전제로 한 결합일 것이다.

     

    • 키워드: 낭만, 현실, 결혼
    • 한 줄 평: 결혼 전 연애와 이후 진짜 러브스토리의 실상.

     

    우리는 러브스토리들에 너무 이른 결말을 허용해 왔다.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해서는 과하게 많이 알고, 사랑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치 아는 게 없는 듯하다.
    사랑이란 우리의 약점과 불균형을 바로잡아줄 것 같은 연인의 자질들에 대한 감탄을 의미한다. 사랑은 완벽을 추구한다.
    우리는 흥분이라 부르지만, 사실 그 말이 암시하는 바는 드디어 우리의 내밀한 자아를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 연인이 나의 본모습에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격려하고 인정하는 쪽을 선택했다는 발견의 기쁨이다.
    외로움은 무익한 성급함을 촉발하거나, 잠재적 배우자에 대한 의심과 양면가치를 가로막을 수도 있다. 어떤 관계든 그 성공은 연인과 함께할 때 얼마나 행복한가에 딸려 있을 뿐 아니라, 혼자인 것을 각자가 얼마나 걱정하는가에 따라서도 결정된다.
    결혼 :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아직 모르는 두 사람이 상상할 수 없고 조사하기를 애써 생략해 버린 미래에 자신을 결박하고서 기대에 부풀어 벌이는 관대하고 무한히 친절한 도박.
    협상을 위한 인내심이 없으면 비통해진다. 원인도 잊은 채 화가 나는 것이다.
    우리는 성숙한 자아 너머의 것을 바라보고 실망하고 분노하고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내면의 아이를 만나는 (그리고 용서해 주는) 것이 가장 큰 특권이기도 하다는 점을 잊는다.
    의사 전달을 잘하는 기본 요건은 자신의 성격 중 더 문제가 되거나 더 특이한 면이 있더라도 그 때문에 당황하지 않는 능력이다.
    잘 들어주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라면 마음속에 얼마간 담아둘 혼란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이미 경험을 통해 모든 게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성적일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익혀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한두 가지 면에서 다소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쾌히 인정할 줄 아는 간헐적인 능력이다.
    아이는 어른에게 사랑의 다른 측면을 가르쳐 준다. 진정한 사랑은 까다롭고 불쾌한 행동의 이면에 놓여 있을지 모르는 무언가를 최대한 관대하게 해석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한다는 점이다… 만일 이 본능을 성인들의 관계에 조금이라도 도입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친절한 사람이 되겠는가? 그렇다면 성인들의 관계에서도 심술궂음과 잔인함을 보아 넘기고 거의 항상 그 이면에 깔려 있는 두려움, 혼란, 피로를 감지해 낼 수 있다. 인류를 사랑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이런 의미일 것이다.
    부모의 사랑이 그토록 강한 것은 아이가 괴롭고 두려운 심정으로 어른 세계의 진짜 척도와 불편한 고독을 이해해야 할 그날을 위해서다.
    부모의 다정함만으로 충분하다면 인류는 활기를 잃고 머지않아 사멸할 것이다. 인류의 생존은 마침내 넌더리는 내고 사랑과 흥분을 선사할 더 만족스러운 원천을 찾겠다는 희망을 품은 채 세상으로 나아갈 아이들에게 달려있다.
    간격을 극복하고 우리가 필요한 존재라는 보증을 획득하는 일은 단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 그런 일은 틈이 생길 때마다(외박, 바쁜 기간, 야근) 반드시 반복된다. 모든 막간에는 상대가 여전히 나를 원하는가라는 의문을 매번 새롭게 되살리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재보증이 대단히 필요하다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고 기분 좋게 인정할 만한 방법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은 애석한 일이다… 불안은 별 탈 없음을 뜻하는 별난 징후일 수도 있다. 불안은 우리가 상대방을 당연시하지 않는다는 것, 일이 정말로 나쁘게 돌아갈 수 있음을 잘 알 정도로 우리가 여전히 현실적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가 신경을 쓸 만큼 충분히 애정을 쏟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사회는 부부가 모든 면에서 평등하기를 기대한다지만, 실제로 기대하는 것은 고통의 평등이다. 그러나 괴로움의 복용량을 정확히 똑같게 계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불행은 주관적인 경험으로, 각 당사자가 실제로는 자신의 삶이 더 저주받았으며 파트너는 이를 인정하거나 속죄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언제라도 진지한 경쟁에 돌입할 수 있다. 자신이 더 힘들게 살고 있다는 자기 위안식의 결론을 피하려면 초인적인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 눈에 정상으로 보일 수 있는 사람은 우리가 아직 깊이 알지 못하는 사람뿐이다. 사랑을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을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이다.
    결혼 : 자신이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가하는 대단히 기이하고 궁극적으로 불친절한 행위.
    우리는 정직성에 너무 감명하는 탓에 정중함의 미덕들을 망각한다. 아끼는 사람이 우리의 본성에서 상처를 줄 수 있는 면과 항상 전면적으로 마주치지 않게 하려는 욕구 말이다.
    ‘회피’와 ‘불안정’은 러브스토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단어지만 ‘낭만적’이라는 말을 ‘사랑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이란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그 둘은 가장 낭만적인 말이 될 것이다.
    이 세상에 항상 나쁘기만 한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 스스로도 고통스럽다. 그러므로 적절한 대응은 냉소나 공격이 아니라, 드문 순간이나마 우리가 할 수 있다면, 사랑해 주는 것뿐이다.
    결국 실패에 연연하는 것은 위대한 성취가 아니다. 씩씩한 태도로 자신의 인생을 관대하고 희망적으로 보는 관점을 찾고 스스로에게 친구가 될 줄 알아야 한다. 우리에겐 타인들 앞에서 의연함을 보여줄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결혼할 사람을 선택하기란 감정의 존재 법칙을 우회할 방법을 찾았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고통을 흔쾌히 견딜지 결정하는 일이다. 아니면 우리는 모두 당연히 악몽의 전형인 ‘엉뚱한 사람’을 곁에 두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재앙일 이유는 없다. 우리는 또 다른 타락한 생명체와 함께 사는 현실에 나 자신을 적응시킬 최대한 부드럽고 친절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결혼은 ‘어지간히 좋은’ 결혼만 있을 수 있다.
    우리는 마치 ‘사랑’을 단일하고 분화되지 않은 것처럼 얘기하지만, 사실은 매우 상이한 두 가지 양식인 사랑받기와 사랑하기로 이루어져 있다. 후자를 실행할 준비가 된 동시에 전자에 대한 우리의 비정상적이고 위험한 집착을 인식할 때 결혼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파트너는 우연히 기적처럼 모든 취향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 지혜롭고 흔쾌하게 취향의 차이를 놓고 협의할 수 있는 사람이다. ‘제짝’의 진정한 표지는 완벽한 상보성이라는 추상적 개념보다는 차이를 수용하는 능력이다. 조화는 사랑의 성과물이지 전제 조건이 아니다.
    불안에 굴복하지 않을 용기, 좌절하여 남들을 다치게 하지 않을 용기, 세상이 부주의하게 입힌 상처를 감지하더라도 너무 분노하지 않을 용기, 미치지 않고 어떻게든 적당히 인내하며 결혼 생활의 어려움들을 극복할 용기, 이것은 진정한 용기이고, 그 무엇보다 더욱 영웅적인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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