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안 느끼한 산문집>
    후기/책 2024. 3. 1. 20:28
     
    안 느끼한 산문집
    첫 월급 96만 7,000원. 보증금 2,000에 68만 원짜리 옥탑방에서 동생, 친구와 셋이 월세를 나눠 내는 현실을 담백한 시트콤처럼 펼쳐낸 『안 느끼한 산문집』. 날이 갈수록 올라가는 보증금을 쫓느라 헐떡거려도 밤이 되면 개와 술과 키스로 청춘을 알차게 소모하는 청춘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유머와 눈물이 교차하고 육두문자가 춤을 추지만 한 번도 괜한 ‘시발’은 없다. 닳아빠진 인간의 발악이 아니라 포기를 많이 겪어보지 않은 자만이 내뱉을 수 있는 탄성에 가까운 육두문자 속에서 사뿐히 청춘의 한을 날리고 일터로 나가는 저자는 어떤 느끼한 목표나 희망보다 당장의 행복을 꺼내 쓰고, 사랑하는 이들과 열렬히 행복을 나눈다. 기성세대의 문법을 깨부수는 저자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우리는 당연한 것들로부터 멀어지고, 케케묵은 느끼함에서 벗어나게 된다.
    저자
    강이슬
    출판
    웨일북(whalebooks)
    출판일
    2019.09.01

     

    지난 나의 서사는 흑역사의 삭제를 수차례 거듭한 끝에 원정서는 휘발되고 수치심과 상실감으로 뒤범벅된 느끼한 공(空)만 남았다. 그런 까닭에 <안 느끼한 산문집>이라는 일필휘지의 느낌이 강한 제목에 매료된다.

    안 느끼하다는 전제는, 작가 역시 차오르는 감성에 판단력을 잃고 적어 내린 느끼한 글로는 진심을 전하기 힘들며 그 차기작을 잇지 않고자 예방 차원에 설치한 덫이라는 것이다. 그 안에서 자신과 자신을 이루는 모든 것을 살뜰하게 살피며 안전한 행복을 누렸다는 문장에 무릎을 탁 쳤다. 세상에나 마상에나,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깨달음과 동시에 때늦은 허탈함이 몰려왔다.

    나는 요즘 들이닥치기 직전인 30대에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잡혀있다. 그래선지 30대 작가의 이야기에 시선이 절로 이끌린다. 물론 작가가 내 나이 또래인 건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제목에 이끌려 펼친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던 원동력은 순전히 20대 끝자락에 섰을 적 작가가 펼치는 담백한 서술 덕분이었다.

    3년 전에 내 나이였던 작가의 현황과 회상을 넘나들며 가난, 사랑, 우정, 아픔, 직업의식 등. 아무리 개별성을 갖춘 들 얼핏 보면 흔하디 흔한 단편적인 소재임에도 흡입력을 지닌 필력은 역시 작가의 영역이란 차원이 다르구나 싶다.

    교훈과 힐링을 주리란 강박적인 사명감이 없는 가벼운 허심탄회는 그러나 묵직한 울림과 함께 생각의 여지를 준다. 글과 함께 나 역시 슬픔과 기쁨을 넘나들며 무료했던 정서에 활력을 북돋을 수 있었다. 제목이 없는 글마저 하나의 제목이 된다. 언제 어디서나 발랄하고 털털한 마인드는 매력적이다.

    부모님의 넘치는 사랑이 커다란 범위를 차지했겠지만, A4용지 세 장만큼 쓰고 난 뒤에 딱 그만큼 회복되었다는 그의 내실 좋은 멘탈은 진심으로 경외심마저 든다.

    또한 가난을 팔아 돈을 벌겠다는 포부나, 20대 초반에 홀로 2주간 이탈리아를 여행하리란 발상은 실로 비범하게 여겨졌다(혼이 빠지게 웃었던 너무 값싼 숙소 에피소드는 사실 안타까움보다도 부러움이 컸다. 그 푸른 눈의 요정들, 실로 뮤즈인 듯 인원수도 어쩜 9명씩이나 되는 그들을 실물로 만날 수 있다면 언제고 수치심을 팔겠다는 염원마저 들었다).

    엎지른 물을 주워 담을 수 없고 지나간 시간은 돌이킬 수 없지만 후회의 위로 후회가 덧씌워져 미칠 듯이 안타깝다. 서른이라는 도래할 전환점이 너무도 막막하다.

    서른 이전의 내 상태는 백지와 같아서 새로운 출발선이 될 수 있으리란 근거 없는 낙관이 자리매김하다가도, 또래보다 출발 선상이 한참 뒤처졌단 조급함을 떨쳐낼 수 없다. 프롤로그에 작가의 주문대로 읽는 내내 행복했지만 이면은 못내 쓸쓸했다.

    그러다 책 갈무리에서 작가의 새로운 주문이 눈에 들어온다. 나를 까고 밟아대는 세상에서 나까지 자신을 코너로 모는 것은 너무 가혹하니 나라도 내 편이 되어주자고. 나를 알아보지 못한 댁들이 안타깝다고 생각해 버리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그러니까, 나는 굉장히 짱이라고!

    그런 고로 나와, 나의 꿈과,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모든 낙들과 함께, <안 느끼한 산문집>의 작가 강이슬의 행복을 집착적으로 빌어본다.

     

    • 키워드: 산문, 진심, 행복
    • 한 줄 평: 나는 존나 짱이다!

     

    애초에 잘못 설계된 양팔저울을 가슴에 지고 살아가느라 이렇게 힘든 건가 싶었다. 사랑을 담은 접시가 바닥에 단단히 붙어서 반대쪽에 무엇을 아무리 많이 담아도 절대로 기울어지지 않을 양팔저울. 기울어진 접시 위에 아무리 많이 담아봤자 수평에 가까워지기는커녕 애써 담은 것들만 우르르 허물어질 텐데 나는 그 헛수고를 모른 척하며 계속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미워하는 마음은 하강 코스에서 완전히 고장 나버린 롤러코스터처럼 확실한 파괴를 향해 감속 않고 돌진한다. 아무리 애를 쓴들 멈출 수 없는 상태, 그 예고된 결과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장 난 마음이 멈추기를 기도하며 기적을 바라든가, 혹은 예고된 파괴를 등지고 눈을 질끈 감아 외면하는 것뿐이다. 기적은 확실함에 가까운 확률로 일어나지 않고, 외면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는다.
    접점이 없어야 할 미움사랑 두 단어는 언젠가 기어이 만나 하이파이브를 치고야 만다. 그 둘이 맞부딪치며 내는 소리의 파동은 크레셴도로 커지며 온몸을 휘젓다가 명치를 파고들어 흉한 흔적을 남긴다.
    사랑하지 않으면 이렇게 미워할 일도 없을 테고 나는 아프지도 않을 텐데 내 마음은 쓸데없이 물렁하고 담벼락도 하찮아서 늘 아무나 마음에 들이고 듬뿍 사랑에 빠져 괴로운 결말을 보고야 만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경험치를 쌓아야지만 비로소 무탈하고 능숙하게 두근거림을 즐길 수 있다. 어른으로 자란다는 것은 어쩌면 무사히 두근거리는 방법을 익히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긴장된 마음을 숙련된 솜씨로 차근차근 정리할 때면 불현듯 서툴렀던 어린 날의 두근거림이 떠오른다. 앞으론 눈물이 날 정도로 두근거림에 압도당하는 날은 영영 없으려나 하는 생각에 조금 쓸쓸해진다. 그러나 나는 그런 종류의 헛헛한 마음들을 달래는 법을 아직 알지 못한다.
    절대 닮고 싶지 않은 엄마의 인생을 내가 주최했다는 사실이 복잡하게 와닿는다.
    본디 비밀이란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정말 비밀이야. 정말 정말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하고 거듭 약속을 해야만 조금만 의심하면서 털어놓을 수 있는 것 아니었나. 완전한 타인을 향한 대책 없는 신뢰라니, 아이러니했다. 비밀 유지를 기대하지 않아서 더욱 부담 없이 말할 수 있는 걸까.
    가끔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오래오래 걷고 있는 느낌이다. 이 버팀의 터널 끝에 과연 광명이 있을까. 터널 끝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것이 매서운 눈보라나 폭풍우는 아닐까. 천둥 번개가 내리치는 폭우가 터널 밖에서 다리는 꼬고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 일단은 빛도 없지만 낙뢰도 없는 터널 안에서 폭우를 견뎌낼 체력을 쌓아두는 셈 치고 씩씩하게 잘 걸어봐야겠다. 물론 터널 밖이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잔디밭이라면 정말 좋겠다.
    내 탓이 아닐 때는 내 탓을 하지 말자. 내 탓일 경우에는 내 탓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애써 찾아 탓하며 정신 승리를 하자. 가만히 있어도 나를 까고 밟아대는 세상에서 나까지 자신을 코너로 모는 것은 너무 가혹하니까. 나라도 제대로 각 잡고 서서 내 편이 되어주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롭다.

    '후기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른 방식으로 보기>  (0) 2024.04.27
    <인문학 공부법>  (0) 2024.03.01
    <3n의 세계>  (4) 2024.03.01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  (8) 2024.03.01
    <나는 작가입니다, 밥벌이는 따로 하지만>  (0) 2024.03.01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