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제목부터 마음이 끌렸다. 책을 접했을 무렵 내 머릿속을 맴돌던 주된 고민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먹고사는데 부족함 없이 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였다.
그런고로 밥벌이는 따로 하지만 나는 작가라고 말할 수 있는 당당함이, 쑥스러우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순수하고 직설적인 표현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혹자가 보기에 미친년처럼 읽는 내내, 가슴이 저릿해 탄식하다가도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박장대소하기를 순환했다. 특히나 이 책에서 작가의 다양한 주변 인물에 대한 묘사는 몹시 흥미진진하다.
본문 중, “난 그 꿈을 소중히 여긴 게 아니라 그것마저 놓아버린다면 내가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버리는 걸 두려워하고 있었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딱 현재의 내 심정이다.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주저앉아 하릴없이 비관만 하던 터였다.
하지만 결국 내 삶의 주인공은 나이다. 마침내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임을 인정하며 그저 내 삶의 주인공이기만 하면 된다는 작가의 말이 적잖은 용기를 주었다.
이 책에서 내가 느낀 작가의 삶은 나름대로 처절하고 치열하지만 결코 영웅담이 아니다. 그가 스스로 작가라고 일컬을 수 있었던 건 단지 글을 쓰는 것이 좋아서였다. 밥벌이를 따로 하는 동안에도 묵묵히 자신의 글을 써나갔다. 그래서 그는 작가다.
재능 말고도 내가 가장 오만했던 부분은 바로 경험이었다. 이 책을 보고 나니 더욱 느꼈다. 저자가 내 나이보다 위이지만 그가 내 나이대에 겪은 세상과 통찰은 훨씬 깊었다. 미처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도 그만의 소신은 깊은 울림을 준다. 저자는 그토록 고통스러운 과거뿐 아니라 사소한 일상 속에서도 끊임없이 보고 배우고 느꼈다.
거창한 비유 없이 덤덤하고 의연하게 서술하며 타인을 대하는 시선과 행동은 냉소적이면서도 그 이면에 다정함이 느껴졌다. 적어도 나는 그로 인해 위안을 받았다. ‘당신보다 더 안 좋은 상황에 처한 이런 사람들도 있으니 불평불만하지 말아요!’라는 일갈이 아닌 그저 덤덤하고 간결하게 풀어낸 성찰과 견해였을 뿐이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욱 공감할 수 있었다.
작가의 말마따나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이다. 그렇게 내던져진 세상에 10년, 20년 또 30년을 버티듯 살아보지만 막상 현실에서의 우리의 실체는 결코 이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주인공이 아님을 끝내 받아들이며 각종 아픔이 도사리는 어른으로의 과정은 실로 녹록지 않다.
그렇다 한들,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아닐 순 없다. 확고한 정체성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 기실 어렵지만 달리 보면 그리 어려울 건 또 없다. 그렇게 하루하루,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에 옮긴 순간이 모이고 모여 나라는 정체성을 이루는 것이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단 한 번뿐인 내 인생의 주인으로서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나도 예술가라고.
키워드: 밥벌이, 주체성, 성찰
한 줄 평: 주인공 아닌 주인공들을 위한 담담한 위로.
[31p.] 외눈박이 세상에선 두 눈 가진 게 병신일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멀쩡한 한쪽 눈을 뽑아버릴 수야 없는 노릇 아닌가.
[75~76p.] 몇 걸음 물러나서 보니 그들의 혹독한 우울과 외로움, 패배 의식과 상처, 그리고 고통이 더욱 선명했다. 그러나 거기에 나까지 전염될 필요는 없었다… 그들이 자신의 인생에 만족하지 못하는 게 내 탓이 아니듯, 내가 나의 인생에서 겪는 괴로움도 그들 탓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은, 그리고 나는, 고통이 고통스러운 게 아니라 누군가 고통을 알아주길 바라기에 고통스러운 거라고.
[84p.] 어느 쪽이든 특별할 것도 비루할 것도 없고 더 의미 있을 것도 무의미할 것도 없다… 하나도 빠짐없이 인생살이다. 그리고 인생살이를 비웃어봤자 초라해지는 건 나 자신일 거다.
[112p.] 난 나와 다르게 사는 이들에 대해 열등감도 질투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 때론 죽을 때까지 경험해 보지 못할 것들에 대한 희구와 경멸을 모두 버리기로 했다. 내 몫이 아닌 포도라고 해도 딱히 더 달지도 시지도 않은, 그냥 평범한 포도 맛일 테니까.
[131p.] 별을 보고 방향을 잡는다고 꼭 별에 도달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144p.] 굳이 남과 나의 처지를 비교하며 조급할 필요도, 혹은 안심할 것도 없다. 삶은 누군가를 이기기 위한 운동 경기가 아니다. 따져보면 여행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각자의 목적지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 같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160p.] 과거에 대한 부끄러움과 후회는 어쩌면 그때보다 나은 사람이 됐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는 것… 물론 일부러 후회할 일을 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할 것도 아니다.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어제보다 조금이나마 나은 사람이 되고 있다면 부끄러움과 후회는 남을 수밖에 없으니까… 누구나 답을 찾았다고 착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번복하고 수정하고 바꾸면서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거 아냐?
[209p.] 인간의 다른 욕구들이 그러하듯 위로받고 싶은 욕구 또한 적절히 제어하지 않으면… 인생에 악영향만 끼칠 뿐이며, 심지어 범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224p.] 스쳐 가는 인연을 억지로 붙잡으려 하는 것만큼이나, 다가오는 인연을 막으려 애쓰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다. 다가오면 다가오는 대로, 머물면 머무는 대로, 떠나면 떠나는 대로 두면 그만이다.
[225~226p.] 인생은 성취하는 것도 견디는 것도 아닌 지향하기 위해 써야 한다는 걸, 내가 밟고 있는 이곳이 목표로 하는 저곳과 어떤 식으로든 이어져 있으리라는걸, 또 이 순간과 마침내 성취의 순간과, 그 뒤로도 계속해서 이어질 순간들이 동일한 가치를 갖고 있다는걸….
[228p.] 날 분노하게 하고 때론 증오마저 일으키는 것은 상대의 다른 특성이 아닌 비루함이라는 것을 똑똑히 인지하겠다.
[242p.] 일그러진 삶을 바로잡는 첫걸음은 언제나 내가 눕고 쉬고 잠자는 이 자리에서 시작해야만 하는 것이다.
[245p.] 이제 보니 우리가 막연히 동경했던 진짜 어른이란… 아무리 아파도, 넘어지고 부딪히고 부러지고 꺾여도, 나 자신을 온전하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이었다.
[253p.]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뻔한 위로 또한 인생살이 일부다. 어쩌면 다른 거창한 그 무엇보다 쓸데없다고 생각한 위로야말로 다시 인생을 굴러가게 할 용기를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