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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정한 어른
    기록/일기 2024. 12. 21. 23:04

    # 01.

     

    산타와 다섯 루돌프.

     

    토요일에 수영장에 근무하는 임직원들을 위한 간식거리(소포장 과자모음과 귤, 두유, 핫팩, 그리고 동지를 기념한 팥양갱 등)와 손편지로 새해 인사를 적은 미니 크리스마스 카드를 동봉한 선물꾸러미를 준비했다.

     

    너무 과한가 싶지만 어쩌면 송별 선물이 될 수 있어서. 숱한 수강생 중 하나일 뿐이지만 나로서는 겉돌던 올해 끝 무렵에 마음을 붙일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장소였기도 하고. 기실, 누군가에게 정성 어린 선물을 받고 싶은 마음을 대신한 대리만족이었다.

     

    내가 정성껏 준비한 선물애 넣은 연하장 속 내용처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이 일기를 읽는 혹자도, 그리고 나 자신도. 고생 많았던 한 해 마무리와 함께 사랑하는 사람들과 건강하고 따뜻하고 복된 새해가 되길.

     

     

    # 02.

     

    흔한 이혼 부부의 카톡 대화법. jpg

     

    내가 양육 위탁을 요청한 것도 아닌 자신이 애들에게 먼저 만나고 싶다 해놓고 왜 면접교섭권에서 소진하는가(것도 반나절뿐이면서.). 자신이 온천으로 행선지를 정해놓고서 애들 수영복을 왜 내가 대령해줘야 하는가. 저 궁시렁 프로도는 정녕 애아빠가 맞을까. 아니면 자신이 돌봄교사라고 착각하는 게 아닐까.

     

    피차 말로만 존대하면서 상호 존중이라곤 눈 씻고 찾을 수 없는 화법이다. 모쪼록 부부로선 파국이어도 부모로선 영원하기에 특히나 미성년 자녀(들)을 둔 채 이혼하면 끝이 끝이 아니다.

     

    행선지와 인원수도 이랬다가 저랬다가 수시로 바뀌었다. 아이들조차 혼란스러워하기에 저쪽에서 무언가 확정이 되면 어련히 알려주겠거니 일단 내버려 두는 대신, 미숙한 아이들을 통해서 통보하지 말고 친권자이자 양육자인 내게 먼저 알리라고 지적하니 묵살당했다.

     

    그래서 나도 준비물 타령하는 어처구니없음에 똑같이 묵살했다. 유치한 도긴개긴이지만 되로 받았으니 말로 갚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무지성엔 무지성, 묵살엔 묵살.

     

    그나저나, 아크릴 결혼 액자는 두 얼굴뿐이니 어찌어찌 가려서 폐기했는데. 하객 몇 십 명이 실린 결혼 액자는 일일이 얼굴을 가려 붙일 수도 없고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 퍽 난감하다.

     

    하여간 내 인생에서 책임감 강한 남자 따윈 없음을 뼈저리게 실감하는 요즘이다. 그러는 상대 역시 마찬가지로 내게 바란만큼 실망했을 것이다. 피차 궁금해하지 않을 뿐. 딱히 알고 싶지도 않고.

     

     

    # 03.

     

     

    하의 친구가 온에게 화가 난다고 상처를 냈다고 한다. 말로는 온이 하의 친구에게 어떤 말로 놀려댔고, 화가 난 친구가 손톱으로 할퀸 모양이었다.

     

    상처를 본 순간 바로 눈이 뒤집힌 나는 당장 하에게 친구한테 전화하라고 시켰다. 친구는 초반에 계속해서 연락을 거절했다. 내가 하와 온의 엄마임을 밝히면서 잠시 통화하자고 전송한 문자의 수신을 확인한 뒤 통화를 걸었더니 연결음 도중에 뚝 끊었다. 눈이 다시 한번 뒤집혔다.

     

    그 친구와 연락이 닿을 때까지 놀지 말라고 하니 하는, 왜 온이 먼저 잘못했는데 자신이 피해를 받냐며 징징거림에 세 번째로 눈이 뒤집혔다. 네게 소중한 친구라도 가족이 다친 일이 우선이라고, 네 동생을 다치게 한 친구랑 못 놀게 한다는 이유로 골을 내면 되겠느냐고 아무리 철이 없어도 천지분간 좀 하라고 노발대발했다, 고작 열 살배기 딸에게.

     

    널뛰는 감정을 진정시킨 뒤 하를 달래는 동안 하의 친구와 연락이 닿았다. 그 친구네 역시 한부모가정인 사정을 알았던 나는, 부모에게 직접 사과를 받기보단 경각심을 일러줄 요량이었는데 막상 어린아이의 떨린 목소리를 듣자 마음이 약해졌다.

     

    나는 아이들 간의 갈등 사실을 순서대로 짚어주면서, 당연히 온도 잘못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상해를 가하는 건 잘못된 행동이라고 알려줬다. 부모님께도 네 행동을 알려드렸냐는 물음에 아이는 그렇다고 답했다. 나는 소기 용건대로 어른을 바꿔달라고 하는 대신, 아줌마가 너의 말을 믿어주겠으니 다음 주에 온과 만나면 서로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라고 일러주면서 통화를 끝냈다. 또한 사 남매들을 소집해서 말과 행동의 조심성과 함께, 어른과의 통화 예절도 알려줬다.

     

    그저 나이만 먹는 것과 어른이 된다는 것은 너무도 판이하다. 어른으로서의 행동규범을 알려주려면 알려주는 이가 어른이 되어야 한다. 해서 이번 일이 당황스러웠던 까닭도 어쩌면 그동안의 나는 주도적인 삶이 아닌 그저 누군가가 이끄는 대로 따르고 의지하는 타성에 익숙한 까닭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정작 내가 중심으로 체제를 잡는 것은 이토록 사소한 순간에도 흔들리고 또 외로웠다. 고작 인원구성이 다섯인 가정 단위에서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도 비일비재해질 이런 갈등 상황마다 매번 노심초사할 순 없는 노릇이니. 이번 일을 전환점 삼아 진정한 어른으로 자리매김해야겠다. 아이들을 위해서, 또 나를 위해서.

     

     

    D-5105⭐
    2024년 12월 20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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