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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찬히 너를 두 눈에 담아기록/일기 2024. 12. 15. 06:34
# 01.
공교로웠다. 좀체 음악을 듣기 어려운 수영장에서 마침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가인 <Love wins all>이 배경음악으로 여러 번 울려 퍼졌고, K가 등대처럼 높은 곳에 앉아 두 대의 휴대폰을 연신 만지작거리며 저번처럼 떠날 일 없이 자리를 지켰고, 나는 그런 K를 낮은 곳에서 올려다봤다.
좋아하는 노래인만큼 새삼스러웠다. 항상 들을 적마다 누군가를 떠올렸던 자리에 이제는 K가 있었다. 서로를 향한 줄 알았던 끝까지 함께하기를 바랐던 누군가에게도 끝끝내 닿지 못한 바람이라, 하물며 대화조차 어려운 K와는 사랑은커녕 우리라는 수식조차 가당치도 않지만. 잠깐이나마 함께 손 잡으며 거리를 걷고 웃으며 대화 나누고 포옹하던 하루뿐인 그날이 종종 그리웠다.
*찬찬히 너를 두 눈에 담아 한 번 더 편안히 웃어주렴. 유영하듯 떠오른 그날 그 밤처럼.
어쩜 터닝 직전이었던 그 타이밍에 K와 마주쳤다. 눈빛과 눈빛이 찰나에 맞닿았다.
아마도 그는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 또는 누군가를 응시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착용한 수경이 새까매서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내심 반가운 시선을 들켜서 3초 이상 눈맞춤이 어려웠을 테니까. 추위와 더위가 혼재된 습기로 눅눅하게 각인된, 귀한 낭만의 순간이었다.
나는 결국 시선이 던진 시사를 파문처럼 받아들였다, 밀려올 듯 나갈 듯 기실 제자리에 머문 채 내 몸을 감싸는 물살처럼. 더 이상 거부할 수도 그렇다고 키울 수도 없는 감정이었다.
그래. 딱 이 정도이길. 그저 이 정도 거리에서 바라만 볼 수만 있길. 내게 미움보다는 차라리 무관심이길. 찌푸린 미간이 빚은 한숨에 상처받지 않아도 되고, 무심하게 던진 시선 한 조각에 닿지 못해 애처롭지 않아도 되고, 이렇게 가끔씩 유영할 적마다 찬찬히 너를 두 눈에 담을 수 있게 해 주길. 여기서 더 멀어지지만 않길.
D-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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