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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 출산
    후기/출산기 2024. 2. 27. 18:44

     

    • 태명 : 호둥
    • 출생일 : 2019년 07월 15일 (음력 : 2019년 06월 13일)
    • 출생 주수 : 39주
    • 출생 시각 : 오전 08시 57분 (진시)
    • 성별 : 남
    • 혈액형 : AB rh+
    • 몸무게 : 3.05kg
    • 분만 방법 : NSVD (자연 질식 분만)

     

     

    # 01. 오전 3시 20분

    야식 먹고 잠들던 게 찜찜해선지 그냥 눈이 떠졌다. 일어난 김에 시원하게 샤워하고 양치했다(지금 생각하면 무의식 중에 촉이 왔던 모양이다). 머리를 말릴 겸 거실 소파에 드러누워 휴대폰으로 육아용품 아이쇼핑 시작한 지 10분도 안 돼서 갑자기 양수가 퍽! 주르륵…

    파수 전에 씻은 게 정말 신의 한 수였다(양수 파수 후에는 감염 위험 때문에 24시간 내에 분만해야 하고 샤워할 수 없다). 당황해서 J를 깨우고 산모패드고 뭐고 경황이 없어 속옷을 갈아입으며 그냥 오버나이트를 찼다. 부랴부랴 준비해 둔 호둥이 배냇저고리 속싸개, 수건, 세면도구 등 짐을 쌌다. J한테는 친정엄마가 애들 보러 오시면 병원으로 오라고 부탁하고 혼자서 먼저 출발했다.

     

     

    # 02. 오전 3시 40분

    친정엄마께 전화드려서 엄마가 오시는 동안 혼자 집을 나서는데 때마침 아파트 정문에서 택시가 보였다. 당시에 어둡기도 하고 너무 경황이 없어서 빈 차라고 빨간등이 켜진 택시만 보였는데, 어디선가 어서 타시라는 목소리가 들려서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J 또래의 남자 세 분이 캐리어 들고 택시를 타려던 중이었다. 그분들은 만삭인 내가 다급하게 택시를 외치며 잰걸음으로 오는 걸 보고 기꺼이 양보해 주셨다.

    첫째 낳으러 갔던 6년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스물한 살 밖에 안 됐고 당시에 집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미련하게도 진통 중에 배를 부여잡고 택시를 잡으러 갔다(그 당시 진통 중에 구급차 부를 수 있는지도 몰랐고, 평소에 집에서 병원까지 콜택시 불러도 잘 오지도 않아서 부를 생각도 못 했다). 하필 또 한여름이었고 병원 방향으로 가려면 경사가 높은 오르막길에서 타야 했는데, 어떤 여자가 2m도 안 되는 거리에서 먼저 택시를 잡은 것이다.

    괴로워하는 나를 보고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보다 못해서 택시를 타려던 여자에게, 산모가 진통 중인데 양보해 주면 안 되냐고 양해를 구했음에도 바쁘다며 눈앞에서 그 택시를 타고 떠났던 일이 떠올랐다(결국 근처 파출소에서 경찰차 타고 산부인과로 갔다). 종종 그때를 떠올리면 사정이 있겠거니 생각하면서도 서러웠는데… 양보해 주신 세 분께 정말 감사해서 여러 차례 인사드린 뒤 이동하는 택시 안에서도 울컥해서 눈물이 났다.

    병원 가는 길에 슬슬 밀려오는 진통만으로도 괴로운데 택시 기사가 계속해서 질문 공세(를 가장한 짜증 섞인 불만)를 퍼부었다. 구급차를 부를 것이지 왜 공항 가는 택시를 타느냐, 이 밤에 남편은 뭐 하고 혼자 가냐. 사실 경황이 없어 공항 가는 택시인 줄도 몰랐지만 어찌 됐든 병원까지 데려다주시니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잔뜩 긴장하는 와중에 애써 친절하게 대답해 드렸다.

     

     

    # 03. 오전 4시 20분

    분만실에 도착해서 산모 입원복으로 갈아입고 첫 내진을 했다. 자궁문 2cm쯤 열려 있었다. 그동안 친정엄마가 집에 도착하셔서 자고 있는 애들을 돌보시고 J가 왔다.

     

     

    # 04. 오전 4시 40분

    10분 간격으로 진통이 잡히기 시작했다. 넷째 때야 비로소 처음으로 J가 해준 입원 소속이었다.

     

     

    # 05. 오전 5시 15분

    5분 간격으로 진통이 잡혔다. 속옷을 입고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며 서서 왔다 갔다 했고 J는 짬짬이 잠을 잤다. 다시 누워서 진통할 때 간호사님이 내진하러 오셨고, 큰애들 때는 입원 수속하기 전에 미리 했던 관장과 제모를 그제야 했다.

     

     

    # 06. 오전 7시 무렵

    양수도 파수됐고 거의 2시간은 지났으니 더 열렸을 거란 예상과는 다르게 겨우 3cm 열렸다. 간호사님은 넷째라서 이러다가도 금방 진행될 수 있다고 하셨다. 진통 간격은 점점 3분 간격으로 좁혀졌다.

     

     

    # 07. 오전 7시 40분

    2~3분 간격으로 진통이 잡히자 강도가 점차 세졌다. 진통이 올 때마다 아가를 밑으로 보내 듯이 J의 손을 꼭 잡고 호흡에 집중했다. 변 마려운 느낌이 날 듯 말 듯해서 다시 침대에서 일어나 볼일을 보고 서서 진통을 하는데 허리가 뻐근해졌다. 아기가 내려온 것이 느껴졌다.

     

     

    # 08. 오전 8시 2~30분

    1분 간격으로 진통이 오니 악 소리가 절로 나오기 시작했다. J를 통해 변 마려운 느낌이 나니 간호사님을 불렀다. 내진 결과 아이가 많이 내려왔으나 좀 더 기다리라고 하셨다. 계속해서 호흡하면서 아래의 감각에 집중하는데 고통의 강도가 점점 세졌다.

    3분도 안 되어 다시 간호사님을 불렀는데 이번에는 수간호사님이 오셔서 아직 3cm 밖에 안 열렸다고, 무통주사 놔주기도 이르다며 내진도 안 하고 나가시려는 걸 내가 애원하다시피 붙잡았다. 내진을 하시고 나니 진행이 빨리 됐다고 본격적으로 분만을 준비하셨다.

    그 바쁘신 와중에도 틈틈이, 내가 너무 고통스러워하니까 이제 다 됐다며 같이 호흡하는 걸 도와주셨다. 수간호사님을 비롯해 다른 의료진분들도 첫째, 둘째 낳았을 때랑 다 다른 분들이셔서 그런지 같은 병원인데도 분위기가 달랐다. 좀 더 온화하고 안심시켜 주시려는 느낌이어서 마음이 편했다.

     

     

    # 09. 오전 8시 50분

    아기 침대가 들어오고 내가 누워있는 침대 발치에는 두 다리를 올려 얹는 기구가 생겼다. 다들 분주하게 세팅을 준비하고 간호사님들 말에 J도 미리 짐 챙겨서 나가 있는 동안 분만실에 잠시 나 혼자 있는데, 차라리 기절했으면 좋겠다(고통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순간적으로 든 생각이지만 분만 중에 산모가 의식을 잃으면 산모와 태아 모두가 위험한 상황이라고 한다.) 등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다시 수간호사님과 다른 간호사님 두 분이 들어오셔서 큰애들 나이도 물어보시는 등 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이런저런 말을 걸어오시다 진통이 올 때마다 내진을 서너 차례 하셨다. 진통 1~2분 간격 때의 내진은 그렇게나 아픈데 분만 직전의 내진은 오히려 덜 아프다.

    마지막 내진 때 아기 머리가 골반에 끼인 느낌이 들면서 몸에서 저절로 힘이 들어갔고 너무 고통스러워서 악을 썼다. 간호사 두 분이 힘을 빼고 호흡하라고 번갈아 말씀하시는 동안 원장 선생님이 들어오시는데 때마침 밑으로 아기 머리가 쑥 나오는 게 느껴져서 순간 무서웠다.

     

     

    # 10. 오전 8시 57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의사 선생님이 제때 받아주셨음을 얼추 느꼈다. 옆에서 수간호사님이 시계를 보며 다급하게 57분! 을 여러 차례 외치셨고 이내 아기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렸다.

     

     

    # 11.

     

    작고 소듕한 우리 막내.

     

    다들 잘생겼다고 하는데 난 아직 잘 모르겠어…


    J는 항상 애들 낳을 때마다 같이 분만실에서 분만 과정을 지켜봤으니, 이번에 처음으로 분만실에서 나가자마자 들렸던 아가 울음소리가 우리 호둥이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고 한다. 분만까지 급속도로 진행되기도 했지만, 아마 요즘 분만 과정을 지켜본 후 PTSD(출산 트라우마)를 겪는 아빠들이 많아져서 간호사님들이 선 조치를 취하신 것 같다.

    진이는 처음에 A형이랬다가 1~2시간 뒤에 AB형으로 정정됐다. AB형이 한 집에 무려 4명! AB형 사 남매라니! 이를 토대로 추측건대 J는 AA형 나는 BB형인가 보다. 그도 그럴 것이 시댁 식구가 전부 A형이고 우리 친정도 네 식구가 다 B형이긴 하다. 그래도 그렇지 한 집에 사 남매가 다 같은 AB형인 게 참 신기하네.

     

     

    # 12.

     

    결국 난 애 낳기 3일 전까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 덕분인지, 아니면 출산만 네 번째인 탓인지 몰라도 무통 없어도 낳기 바로 직전까지는 진통이 그리 힘들진 않았지만, 3cm에서 몇 시간 동안 진행이 없다가 갑자기 10cm까지 훅 열린 건 나뿐만 아니라 수간호사님부터 다른 간호사들까지 놀랐다고 하셨다.

    셋째 출산 때에 이어 이번에도 아기가 다 내려온 걸 제대로 느꼈다니 출산 베테랑이 다 되었구나 싶었다(그래도 더 이상 출산은 안 돼!).

    여하튼 자궁문 10cm 다 열리고 나서 아기랑 태반 나오기 전까지 간격도 없는 레알 생진통이 시작될 때… 첫째 때는 원체 진행이 느렸으므로 그 상태를 한 시간을 겪었는데, 아이들을 낳을수록 시간이 단축되더니 막내는 엄청 빨리 내려온 것이다. 분만 세팅이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큰애들 땐 밤에 낳았기 때문에 2박 3일인 입원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았던 반면(입원하고 두 시간도 안 돼서 2일 차가 되기 때문에 셋째 때는 그냥 하루 더 추가했었다.), 막내는 아침에 낳아서 덕분에 병원에서 더 오래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셋째 빼고 첫째와 둘째도 낳았던 산부인과인데 내가 머문 입원실 복도에 입원 중인 사람이 나 포함해서 둘 뿐이었다. 첫째 때 1인실이 없어 특실로 갔던 걸 생각하면 6년 사이에 저조해진 출산율이 확 실감이 났다.

    셋째 때도 그랬지만 아기 낳은 후에 한참 동안 얼굴에 아픈 건 아니어도 쥐 나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얼굴 안에 수십 개의 용수철이 동시에 튕기는 듯했달까. 첫 소변도 J의 부축을 받아 겨우 보러 갔다.

    그래도 걸어 다닐 체력은 생길 만큼 회복이 됐는지 오후부터 슬슬 걸어 다녔다. 시간상으론 비슷하겠지만 큰 애들 때는 다 밤에 낳고 다음 날 점심 무렵에 신생아실로 처음 면회하러 갔던 거 같은데 이번엔 아침에 낳아서 오후에 보러 가니 새삼스럽게 새로웠다.

    12시간도 안 됐는데 얼굴이 그새 또 달라졌어!


    태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사회생활이 아주 제대로다. 엄마가 자기 사진 찍는 거 어떻게 알고 심쿵 서비스 제대로 날려준다. 같은 부모한테 나온 자식들이라고 누나들과 형아의 얼굴이 어우러진 느낌이다.

    친정 식구들은 내리사랑이라 그런지 막내가 제일 인물이 좋다고들 한다. 내 눈에도 막내가 점점 예뻐지니 수유콜로 면회 갈 때마다 나도 모르게 아가 보고 잘생겼다고 칭찬을 연발하다가 간호사님들 맞장구에 정신 차리니 몹시 쑥스러웠다. 이렇게 팔불출이 되어가는구나~

    일부러 맞춘 건 아니지만 첫째는 아빠와 두 바퀴 띠동갑, 둘째는 외할아버지와 다섯 바퀴 띠동갑, 셋째는 엄마와 두 바퀴 띠동갑, 막내는 외할머니와 다섯 바퀴 띠동갑이다. 우리 첫째와 막내처럼 나와 내 친정 동생도 마찬가지로 6살 터울이라, 내가 첫째하고 스무 살 차이 나듯 올해는 친정 동생이 우리 막내한테 엄마뻘 되는 이모가 됐다.

    형제들과의 첫 만남!


    6년 전에 이 병원에서 태어났던 첫째는 어느덧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데, 나는 그동안 셋을 더 낳았다. 그러고 보니 진짜 임신만 7년 내내 했잖아?! 내 20대는 임신과 출산과 육아의 반복, 반복, 반복, 반복이다. 그나마 첫째 땐 3주 동안 조리원에서 지내기라도 했지만 그 뒤론… (말잇못)

    이제 진짜 여섯 식구가 됐다. 삼 남매도 생각 못 했는데 네 아이라니, 인생은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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