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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명 : 호둥
- 출생일 : 2019년 07월 15일 (음력 : 2019년 06월 13일)
- 출생 주수 : 39주
- 출생 시각 : 오전 08시 57분 (진시)
- 성별 : 남
- 혈액형 : AB rh+
- 몸무게 : 3.05kg
- 분만 방법 : NSVD (자연 질식 분만)
# 01. 오전 3시 20분
야식 먹고 잠들던 게 찜찜해선지 그냥 눈이 떠졌다. 일어난 김에 시원하게 샤워하고 양치했다(지금 생각하면 무의식 중에 촉이 왔던 모양이다). 머리를 말릴 겸 거실 소파에 드러누워 휴대폰으로 육아용품 아이쇼핑 시작한 지 10분도 안 돼서 갑자기 양수가 퍽! 주르륵…
파수 전에 씻은 게 정말 신의 한 수였다(양수 파수 후에는 감염 위험 때문에 24시간 내에 분만해야 하고 샤워할 수 없다). 당황해서 J를 깨우고 산모패드고 뭐고 경황이 없어 속옷을 갈아입으며 그냥 오버나이트를 찼다. 부랴부랴 준비해 둔 호둥이 배냇저고리 속싸개, 수건, 세면도구 등 짐을 쌌다. J한테는 친정엄마가 애들 보러 오시면 병원으로 오라고 부탁하고 혼자서 먼저 출발했다.# 02. 오전 3시 40분
친정엄마께 전화드려서 엄마가 오시는 동안 혼자 집을 나서는데 때마침 아파트 정문에서 택시가 보였다. 당시에 어둡기도 하고 너무 경황이 없어서 ‘빈 차’라고 빨간등이 켜진 택시만 보였는데, 어디선가 어서 타시라는 목소리가 들려서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J 또래의 남자 세 분이 캐리어 들고 택시를 타려던 중이었다. 그분들은 만삭인 내가 다급하게 택시를 외치며 잰걸음으로 오는 걸 보고 기꺼이 양보해 주셨다.
첫째 낳으러 갔던 6년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스물한 살 밖에 안 됐고 당시에 집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미련하게도 진통 중에 배를 부여잡고 택시를 잡으러 갔다(그 당시 진통 중에 구급차 부를 수 있는지도 몰랐고, 평소에 집에서 병원까지 콜택시 불러도 잘 오지도 않아서 부를 생각도 못 했다). 하필 또 한여름이었고 병원 방향으로 가려면 경사가 높은 오르막길에서 타야 했는데, 어떤 여자가 2m도 안 되는 거리에서 먼저 택시를 잡은 것이다.
괴로워하는 나를 보고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보다 못해서 택시를 타려던 여자에게, 산모가 진통 중인데 양보해 주면 안 되냐고 양해를 구했음에도 바쁘다며 눈앞에서 그 택시를 타고 떠났던 일이 떠올랐다(결국 근처 파출소에서 경찰차 타고 산부인과로 갔다). 종종 그때를 떠올리면 사정이 있겠거니 생각하면서도 서러웠는데… 양보해 주신 세 분께 정말 감사해서 여러 차례 인사드린 뒤 이동하는 택시 안에서도 울컥해서 눈물이 났다.
병원 가는 길에 슬슬 밀려오는 진통만으로도 괴로운데 택시 기사가 계속해서 질문 공세(를 가장한 짜증 섞인 불만)를 퍼부었다. 구급차를 부를 것이지 왜 공항 가는 택시를 타느냐, 이 밤에 남편은 뭐 하고 혼자 가냐. 사실 경황이 없어 공항 가는 택시인 줄도 몰랐지만 어찌 됐든 병원까지 데려다주시니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잔뜩 긴장하는 와중에 애써 친절하게 대답해 드렸다.# 03. 오전 4시 20분
분만실에 도착해서 산모 입원복으로 갈아입고 첫 내진을 했다. 자궁문 2cm쯤 열려 있었다. 그동안 친정엄마가 집에 도착하셔서 자고 있는 애들을 돌보시고 J가 왔다.# 04. 오전 4시 40분
10분 간격으로 진통이 잡히기 시작했다. 넷째 때야 비로소 처음으로 J가 해준 입원 소속이었다.# 05. 오전 5시 15분
5분 간격으로 진통이 잡혔다. 속옷을 입고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며 서서 왔다 갔다 했고 J는 짬짬이 잠을 잤다. 다시 누워서 진통할 때 간호사님이 내진하러 오셨고, 큰애들 때는 입원 수속하기 전에 미리 했던 관장과 제모를 그제야 했다.# 06. 오전 7시 무렵
양수도 파수됐고 거의 2시간은 지났으니 더 열렸을 거란 예상과는 다르게 겨우 3cm 열렸다. 간호사님은 넷째라서 이러다가도 금방 진행될 수 있다고 하셨다. 진통 간격은 점점 3분 간격으로 좁혀졌다.# 07. 오전 7시 40분
2~3분 간격으로 진통이 잡히자 강도가 점차 세졌다. 진통이 올 때마다 아가를 밑으로 보내 듯이 J의 손을 꼭 잡고 호흡에 집중했다. 변 마려운 느낌이 날 듯 말 듯해서 다시 침대에서 일어나 볼일을 보고 서서 진통을 하는데 허리가 뻐근해졌다. 아기가 내려온 것이 느껴졌다.# 08. 오전 8시 2~30분
1분 간격으로 진통이 오니 악 소리가 절로 나오기 시작했다. J를 통해 변 마려운 느낌이 나니 간호사님을 불렀다. 내진 결과 아이가 많이 내려왔으나 좀 더 기다리라고 하셨다. 계속해서 호흡하면서 아래의 감각에 집중하는데 고통의 강도가 점점 세졌다.
3분도 안 되어 다시 간호사님을 불렀는데 이번에는 수간호사님이 오셔서 아직 3cm 밖에 안 열렸다고, 무통주사 놔주기도 이르다며 내진도 안 하고 나가시려는 걸 내가 애원하다시피 붙잡았다. 내진을 하시고 나니 진행이 빨리 됐다고 본격적으로 분만을 준비하셨다.
그 바쁘신 와중에도 틈틈이, 내가 너무 고통스러워하니까 이제 다 됐다며 같이 호흡하는 걸 도와주셨다. 수간호사님을 비롯해 다른 의료진분들도 첫째, 둘째 낳았을 때랑 다 다른 분들이셔서 그런지 같은 병원인데도 분위기가 달랐다. 좀 더 온화하고 안심시켜 주시려는 느낌이어서 마음이 편했다.# 09. 오전 8시 50분
아기 침대가 들어오고 내가 누워있는 침대 발치에는 두 다리를 올려 얹는 기구가 생겼다. 다들 분주하게 세팅을 준비하고 간호사님들 말에 J도 미리 짐 챙겨서 나가 있는 동안 분만실에 잠시 나 혼자 있는데, 차라리 기절했으면 좋겠다(고통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순간적으로 든 생각이지만 분만 중에 산모가 의식을 잃으면 산모와 태아 모두가 위험한 상황이라고 한다.) 등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다시 수간호사님과 다른 간호사님 두 분이 들어오셔서 큰애들 나이도 물어보시는 등 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이런저런 말을 걸어오시다 진통이 올 때마다 내진을 서너 차례 하셨다. 진통 1~2분 간격 때의 내진은 그렇게나 아픈데 분만 직전의 내진은 오히려 덜 아프다.
마지막 내진 때 아기 머리가 골반에 끼인 느낌이 들면서 몸에서 저절로 힘이 들어갔고 너무 고통스러워서 악을 썼다. 간호사 두 분이 힘을 빼고 호흡하라고 번갈아 말씀하시는 동안 원장 선생님이 들어오시는데 때마침 밑으로 아기 머리가 쑥 나오는 게 느껴져서 순간 무서웠다.# 10. 오전 8시 57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의사 선생님이 제때 받아주셨음을 얼추 느꼈다. 옆에서 수간호사님이 시계를 보며 다급하게 57분! 을 여러 차례 외치셨고 이내 아기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렸다.# 11.
J는 항상 애들 낳을 때마다 같이 분만실에서 분만 과정을 지켜봤으니, 이번에 처음으로 분만실에서 나가자마자 들렸던 아가 울음소리가 우리 호둥이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고 한다. 분만까지 급속도로 진행되기도 했지만, 아마 요즘 분만 과정을 지켜본 후 PTSD(출산 트라우마)를 겪는 아빠들이 많아져서 간호사님들이 선 조치를 취하신 것 같다.
진이는 처음에 A형이랬다가 1~2시간 뒤에 AB형으로 정정됐다. AB형이 한 집에 무려 4명! AB형 사 남매라니! 이를 토대로 추측건대 J는 AA형 나는 BB형인가 보다. 그도 그럴 것이 시댁 식구가 전부 A형이고 우리 친정도 네 식구가 다 B형이긴 하다. 그래도 그렇지 한 집에 사 남매가 다 같은 AB형인 게 참 신기하네.# 12.
결국 난 애 낳기 3일 전까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 덕분인지, 아니면 출산만 네 번째인 탓인지 몰라도 무통 없어도 낳기 바로 직전까지는 진통이 그리 힘들진 않았지만, 3cm에서 몇 시간 동안 진행이 없다가 갑자기 10cm까지 훅 열린 건 나뿐만 아니라 수간호사님부터 다른 간호사들까지 놀랐다고 하셨다.
셋째 출산 때에 이어 이번에도 아기가 다 내려온 걸 제대로 느꼈다니 출산 베테랑이 다 되었구나 싶었다(그래도 더 이상 출산은 안 돼!).
여하튼 자궁문 10cm 다 열리고 나서 아기랑 태반 나오기 전까지 간격도 없는 레알 생진통이 시작될 때… 첫째 때는 원체 진행이 느렸으므로 그 상태를 한 시간을 겪었는데, 아이들을 낳을수록 시간이 단축되더니 막내는 엄청 빨리 내려온 것이다. 분만 세팅이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큰애들 땐 밤에 낳았기 때문에 2박 3일인 입원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았던 반면(입원하고 두 시간도 안 돼서 2일 차가 되기 때문에 셋째 때는 그냥 하루 더 추가했었다.), 막내는 아침에 낳아서 덕분에 병원에서 더 오래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셋째 빼고 첫째와 둘째도 낳았던 산부인과인데 내가 머문 입원실 복도에 입원 중인 사람이 나 포함해서 둘 뿐이었다. 첫째 때 1인실이 없어 특실로 갔던 걸 생각하면 6년 사이에 저조해진 출산율이 확 실감이 났다.
셋째 때도 그랬지만 아기 낳은 후에 한참 동안 얼굴에 아픈 건 아니어도 쥐 나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얼굴 안에 수십 개의 용수철이 동시에 튕기는 듯했달까. 첫 소변도 J의 부축을 받아 겨우 보러 갔다.
그래도 걸어 다닐 체력은 생길 만큼 회복이 됐는지 오후부터 슬슬 걸어 다녔다. 시간상으론 비슷하겠지만 큰 애들 때는 다 밤에 낳고 다음 날 점심 무렵에 신생아실로 처음 면회하러 갔던 거 같은데 이번엔 아침에 낳아서 오후에 보러 가니 새삼스럽게 새로웠다.
태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사회생활이 아주 제대로다. 엄마가 자기 사진 찍는 거 어떻게 알고 심쿵 서비스 제대로 날려준다. 같은 부모한테 나온 자식들이라고 누나들과 형아의 얼굴이 어우러진 느낌이다.
친정 식구들은 내리사랑이라 그런지 막내가 제일 인물이 좋다고들 한다. 내 눈에도 막내가 점점 예뻐지니 수유콜로 면회 갈 때마다 나도 모르게 아가 보고 잘생겼다고 칭찬을 연발하다가 간호사님들 맞장구에 정신 차리니 몹시 쑥스러웠다. 이렇게 팔불출이 되어가는구나~
일부러 맞춘 건 아니지만 첫째는 아빠와 두 바퀴 띠동갑, 둘째는 외할아버지와 다섯 바퀴 띠동갑, 셋째는 엄마와 두 바퀴 띠동갑, 막내는 외할머니와 다섯 바퀴 띠동갑이다. 우리 첫째와 막내처럼 나와 내 친정 동생도 마찬가지로 6살 터울이라, 내가 첫째하고 스무 살 차이 나듯 올해는 친정 동생이 우리 막내한테 엄마뻘 되는 이모가 됐다.
6년 전에 이 병원에서 태어났던 첫째는 어느덧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데, 나는 그동안 셋을 더 낳았다. 그러고 보니 진짜 임신만 7년 내내 했잖아?! 내 20대는 임신과 출산과 육아의 반복, 반복, 반복, 반복이다. 그나마 첫째 땐 3주 동안 조리원에서 지내기라도 했지만 그 뒤론… (말잇못)
이제 진짜 여섯 식구가 됐다. 삼 남매도 생각 못 했는데 네 아이라니, 인생은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