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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명 : 태오별
- 출생일 : 2017년 01월 11일 (음력 : 2016년 12월 14일)
- 출생 주수 : 39주 2일
- 출생 시각 : 오후 11시 10분 (자시)
- 성별 : 남
- 혈액형 : AB rh+
- 몸무게 : 3.46kg
- 분만 방법 : NSVD (자연 질식 분만)
# 01. 오전 5시 무렵
첫째 출산이 39주, 둘째는 38주 6일이었는데 셋째는 39주에도 소식이 없다가 이틀째, 간간이 가진통과 함께 설사와 소변이 잦아지면서 수시로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뭔가 심상치 않다 싶어 짐을 꾸리고 아이들 등원 준비 후 남은 빨래와 청소를 시작했다.# 02. 오전 11시~12시 무렵
업자 불러서 연이 무너뜨린 블라인드 커튼을 재설치하고, 하는 김에 창문마다 방충망에 쌓인 먼지도 청소하려다 배가 너무 아파서 중도 포기했다.# 03. 오후 2시
청소하면서도 설사가 잦아져서 쉬엄쉬엄하다가 도저히 견디기 힘들었다. 어린이집 적응 기간 중이라 3시 하원 예정이었던 둘째 하네 어린이집에 병원에 가느라 하원이 늦을 것 같다고 연락한 후 곧장 병원으로 갔다.
태동 검사 후 진통 잡히는 것 확인하고 내진하니 2cm 정도 진행됐다고 한다. 마침 당직이셨던 담당 선생님이 셋째라 진행이 빨라져서 오늘 저녁에라도 나올 수 있다고 있으니 당장 입원하자고 하셨지만 나는 일단 집으로 돌아가서 짐도 싸 오고 마무리하기로 했다. 오는 길에 신랑에게 연락하면서 어린이집에도 아빠가 하원한다고 연락해 뒀다.# 04. 오후 4시 ~ 6시
남은 집안 정리 후 아이들이 할머니 집에 가있는 동안 입을 내복과 속옷 등을 싸는 동안 신랑이 도착했다. 신랑이 차로 병원에 데려다주고 곧장 아이들을 할머니 집으로 데려다주러 갔다. 분만대기실에 들어가 환복 후 내진하니 3cm가 열려 있었다. 관장과 제모를 했다. 세 번째여도 관장은 절대 3분 이상을 참을 수 없다.# 05. 오후 6시 반 ~ 7시 반
수액 꽂고 자유롭게 다니시라길래 바로 대기실로 나가니 서울에서 오신 친정 엄마가 기다리고 계셨다. 같이 TV 보고 이야기하는데 진통하는 애가 너무 멀쩡한 거 아니냐고 물으셔서(엄마는 나와 동생 둘 다 제왕절개로 낳으셔서 진통을 겪어보신 적이 없다.) 발끈했다.
신랑이 너무 안 오는 것 같아 전화로 어디냐고 하자마자 타이밍 기가 막히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네요~ 하면서 공깨비처럼 신랑이 등장했는데… 역시나 지은탁이 부러웠다.
진통이 주기적으로 오는 듯 하나 강도가 보통인 생리통 정도로 나는 되려 관장하고 나서도 자주 나오는 설사가 걱정이었다(혹시라도 분만 중에 나오는 걸 상상해 버리니 내 존엄성 무엇.). 간간이 담당 선생님이나 내진해 주셨던 간호사님도 마주칠 때마다 너무 괜찮아 보인다고 안 아픈지 물어보곤 했다. 엄마나 신랑도 상태 보아서 새벽에나 나오겠다고 예상했다.
새벽에 나오면 셋째와 나는 쌍 띠동갑에 생일도 똑같아지니 기껏해야 몇 시간 길어지는 진통은 그다지 대수롭지 않았다(진통하다 보면 시간이 훅훅 지나가버려서 시간 개념이 없어진다). 중간에 내진하러 들어가서 태동 검사로 자궁 수축 경과 보시던 담당 원장선생님이 진통이 늘어진다며 촉진제를 투여했다.# 06. 오후 8시 반~10시
자유롭게 돌아다니다가 친정 엄마가 집으로 가신 후, 내진으로 양수 파수 후 5분 간격으로 진진통이 시작됐다.
베테랑답게(?) 진통 올 때마다 신랑 손을 붙잡고 ‘흡-흡-호’ 호흡으로 넘기니 수월하다. 진통 점차 세지니 오한 오고 토하고 난리 났지만, 큰애들 진통할 때 비해서 내가 신음은커녕 앓는 소리 한 번 안 내니 옆에서 손잡아 주고 있던 신랑이 대단하다고 진통 올 때마다 손잡고 응원해 줬다.
어차피 이 병원은 셋째부터 무통을 안 놔준다고 들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내가 큰아이들 키우는 동안 참을성이 많이 생긴 건지 경산부라 진통에 요령이 생기고 진행이 빨라진 탓인지 몰라도, 생각보다 참을 만해지니 한시름 놓은 한편 침착한 나 자신이 새삼 놀라웠다.# 07. 오후 10시~11시
2~3분 간격으로 줄어들고 세기 점점 강해지나 내진은 아직 참을만했다. 신랑 통해서 시간과 진통 간격을 수시로 체크했다. 10시 50분 무렵부터 진통 간격이 1분으로 좁혀지고, 57분쯤에 아기가 많이 내려온 게 느껴져서 진통 끝나자마자 신랑 통해서 간호사님을 호출했다. 간호사님께서 내진하시자마자 진통이 다시 오자 그때부터 처음 악 소리가 절로 나왔다.
자궁문이 다 열리고 나서, 아기 나오기 전까지 간격 없이 풀(full)로 겪는 이른바 생진통이 시작됐다. 간호사님께서 산모님 지금 분만실로 가시는데 힘 그렇게 주시면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첫째랑 둘째를 낳았던 다른 병원에서는 아예 분만실에서 입원해서 침대가 분만 의자로 바뀌었는데, 진통 중 가장 고통스러운 분만 직전에 내려와 휠체어를 타고 분만실로 이동하는 게 나도 그렇고 부축하고 분만 준비하는 간호사님들까지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휠체어로 옮겨 타서 분만실로 이동하는 동안 진통 와도 절대 힘주지 말라는데 누워있을 때 안 들어가던 힘이 자동으로 들어갔다.
간신히 버티고 분만 의자에 앉자 죽을 것 같은 고통이었지만 같지만 양옆에 있는 손잡이를 꽉 쥐어 밑으로 힘을 주니 진통하기 수월했다. 담당 선생님 도착하실 무렵에 벌써 아가 머리가 조금 나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분만실 밖에 대기하던 신랑을 다시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의료진들 신호에 맞춰서 힘을 주기 시작했다.
어떨 땐 힘 빼라는 소리에 내가 잘못 듣고 힘을 더 줬었다. 그때 의료진들이 당황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고, 네가 얼마나 급했으면 그랬겠냐고 셋째 낳은 후에 신랑이 웃으면서 알려줬다. 밑으로 아가가 쑥 나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자 힘 빼시란 소리가 들렸다.
둘째 낳았을 때의 요령을 잊지 않고 떠올려 발끝에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호흡을 하아- 내뱉으며 힘을 빼니 곧 의사 선생님의 출생 선고가 들렸다.# 08. 오후 11시 10분
그 드물다는 AB형을 무려 셋이나 낳다니!
50분 일찍 나와서 내 생일보다 딱 하루 빠르다. 만약 촉진제를 안 맞았으면 아들과 태오와 똑같을 지도 모르겠다. 그 와중에 케이크 아낀다고 좋아하는 신랑은 정말이지… 말을 말자. 1분이라도 늦게 태어났더라면 1월 11일 11시 11분까지 전부 다 1로 맞췄을 텐데, 무슨 의미인가 싶으면서도 괜히 아쉽다.
울음소리 한 번 기차 화통 삶아 먹듯 우렁차다. 폭 싸여서 옆에 눕혀서 태오야- 하고 태명을 불러주니 조용해지다가, 쭈글쭈글한 얼굴이 작은누나 닮았다고 하니 기똥차게 울기 시작했다. 우연치고는 타이밍이 너무 기가 막힌 거 아니니.
큰애들 출산할 때만 해도 낳은 지 얼마 안 돼서 혼자 첫 소변보러 가고, 앉아서 컴퓨터도 하고, 밥 먹고 할 정도로 멀쩡했는데.
셋째라 그런가 애들 때보다 나이를 더 먹어서 그런가, 간호사님들이 휠체어로 부축해서 입원실로 올라가기까지 두 시간 동안 토하고 오한 오고 몸살이 나서 죽을 것 같았다. 출산 후 4시간에 봐야 하는 첫 소변보러 갈 때도 일어날 기운이 없어 밤에 곤히 자고 있는 신랑을 깨우면 난리 나는 걸 잘 알지만 그전에 내가 지레 죽을 것 같아 간신히 깨워서 다섯 시간 만에 화장실에 들어갔다.
또 첫째랑 둘째 출산 때에 비하면, 무통 없이도 오래 진통 안 하고 정말 빨리 낳았지만 회복 속도는 더뎌진 것이 확 느껴졌다. 젖몸살도 항상 퇴원하고 나서 왔는데 미리 준비 못 한 유축기는 입원 마지막날에야 도착해서 굉장히 괴로웠다.# 09.
모쪼록 덕분에 생일 미역국을 병원에서 3일 내내 잘 먹었다. 아주 예상 못 한 건 아니지만 생일 미역국이 몸조리 미역국이 될 줄이야.
셋째의 태명은 태오별, 줄여서 태오. 태양과 오로라, 별똥별을 동시에 보는 태몽을 꾸었다. 주변에서 많이들 태오라는 태명이 이름 같다고 했지만, 이름은 태어난 후에 누나들 이름을 지어준 같은 작명소에서 지었다. 둘째 때 처음 받았었지만 신랑이 특정 종교적인 이름 같다고 반대해서 못 지었던 이름을 결국 셋째 때 또 받았다. 오죽하면 신랑이 자기 모르게 작명소에 전화해서 협박했냐며 으르렁거렸으나 이번만큼은 나의 강력한 요구(?)를 들어줬다.
모든 아이들이 특별하지만 특히 셋째는 내가 직접 꾼 태몽도 인상 깊었는 데다 그 태몽을 꾼 지 딱 1년 만이자 내 스물네 번째 생일 전날에 태어났고, 어렸을 적부터 내가 아이를 낳으면 지어주고 싶었던 이름에 대한 소망도 이루어주었다. 계획을 하면 아예 다른 방향으로 틀어지거나 벗어나는 게 내 인생에서 선물처럼 기적을 준 아가였다.
이제 본격적인 삼 남매 육아가 시작됐다. 사실 아직까진 걱정이 더 앞서긴 하지만 키우다 보면 시간도 빨리 지나가고 점차 적응이 되지 않을까.
아이들 낳을 때마다 느끼지만 부모가 되기 전에는 다 똑같이만 보이던 신생아들도 부모가 되고 나서 보니 그 생김새 하나, 하나가 다 다르더라. 다만 같은 부모 밑에서 난 자식들이라고 첫째의 모습도 보이고 둘째의 모습도 보이곤 한다.
비교적 얌전했던 우리 딸들의 동생이자 첫아들인 요 녀석은 앞으로 과연 어떤 모습으로 자랄지 몹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