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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들유들 둥근 일상기록/일기 2025. 4. 2. 08:25
# 01.눈을 뜨니 5시 20분이었다. 첫차를 탈 시간이었다. 고민 끝에 부지런히 몸을 놀리며 주문처럼 외웠다, 늦게라도 갈 거야. 가고 말 거야.그 말 그대로, 20분을 늦게 출발해서 콜택시를 불러 타고 지각도 아닌 평소처럼 입장했다. 빠뜻하니 숨만 좀 가빴을 뿐 가뿐해서 좋았다.# 02.# 03.시작이 그래서인지 하루종일 대체로 그런 식이었다. 막막한 난관을 어떻게든 헤쳐나갔다. 모의시험은 여전히 비 내리지만 여섯 시간을 수면한 덕분인지 전날처럼 감정식사 없이 무사히 절제했다.연의 잠투정과 등교거부는 다시 시작됐고(제 나름 미안했는지 저녁엔 그렇게 세상 의젓할 수 없다.), 모의시험은 볼 적마다 절망적이고, 당연하게도 통근 지하철은 개떡 같고, 연 못지않게 종잡을 수 없는 전 남편의 행보는 말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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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말씀만 해주소서기록/일기 2025. 4. 1. 08:42
# 01.미워하는 마음으로 삶은 결국 사랑의 또 다른 역설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사랑은 삶과 분리할 수 없다. 그것이 파멸이든, 탄생이든 중요한 원천이자 근간임은 분명하기에.# 02.모처럼 팀 회식 후 한결 따스해진 한낮의 청계천거리를 걸었다. 현실이 아닌듯한 이질감으로 그렇게나 붐비는 인파에도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새벽수영 다니는 수영장에서나 출근길이나 퇴근길이나 근무 중에도 부대끼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고 나는 외로웠다. 저마다 배우자 투정(이라 쓰고 뒷담이라 읽는다 )을 늘어놓으면 내심 부럽기도 해서 안 들리는 척했다.아빠와 살기로 결정한 뒤 한동안 괜찮았던 연은 다시 등교거부 농성을 벌였다. 길어진 통근거리에 자격증 시험까지 바로 목전인데, 새 직장에 적응하기도 바쁜 한 달 내내 아침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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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말씀만 하소서>후기/책 2025. 3. 31. 09:54
대한민국의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거장 박완서가 아들을 잃은 참척의 비극을 겪은 이후 차츰 회복되어 가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내면적 기록이다. 서문에서부터 밝힌 극한 상황에서 통곡 대신 썼다는 글들은 외려 보는 이로 하여금 통곡을 자아낸다. 차라리 미치고 싶으나 미칠 수가 없었다는 애처로운 표현은 그녀가 얼마나 칠흑같이 아득한 절망에 사로잡혔을지 감히 헤아리기가 두려울 정도다.뼈저린 상실감으로 죄책감에 곡기를 끊던 그녀는 이윽고 식사로부터 회복하기에 이르기까지, 숱한 곡절과 만감의 교차가 있었으나 세상을 등지다 싶던 그녀를 삶으로 이끈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었다. 떠나보낸 아들에 대한, 남은 가족들에 대한, 또 말과 글에 대한, 새로운 생명에 대한 사랑이 그녀를 생동하는 삶 속으로 다시금 돌아오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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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싫다기록/일기 2025. 3. 31. 05:26
# 01.꾸준하다는 이유로 사랑을 받거나 꾸준하게 사랑받음은 어느 쪽이든 어렵단 생각이다. 요컨대, 사랑과 성실 사이에는 딱히 상관관계가 없다. 언제 다시 생각이 바뀔지 모르겠으나 현재로선 그렇다.한때는 꾸준하게 지속적이고 싶다는 누군가에게 소속되고 싶어 나를 갈아서 또 끼워서 맞추기도 했지만 이제와 보니 실로 무상하다. 그 당사자의 말마따나 이입하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감정에 취했고 그는 나의 이점만을 취했으니 상흔의 간극은 좀체 좁히질 않는다, 지독하게도.# 02.수면이 부족한 탓인가, 심경이 복잡한 탓인가. 외려 몸에선 그만 먹으라고 신호를 보내는데 식욕억제 퓨즈가 끊어진 듯 무얼 자꾸 먹게 된다. 식사 시간과 캍로리 제한으로 5일 새 서서히 감량시킨 체중이 순식간에 복구됨은 물론 체형(특히 하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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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기록/일기 2025. 3. 30. 09:57
# 01.스타킹에 3부 반바지가 이렇게나 파격적인 패션이었던가. 집요하리만치 과한 관심이 부담스럽다. 어쩌면 내가 진정 원하는 관심은 외적인 요소가 아닌 수용이지 싶다. # 02.영영 못 볼 줄 알았던 K가 내심 반가웠던 것도 같다. 소통은 일절 없지만 강습하는 모습을 간간이 관찰하다 보면 묘한 안정감이 든다. 그는 여전했다. 내가 여전하듯이. 그가 나를 발견했다면 아마도 다음 자유수영 때부턴 못 볼 것이다. 또 나를 부지런히 피하겠지. # 03.나는 하다 하다 나보다 스무 살이나 어린 딸에게까지 나를 떠난다는 이유로 야속해하는 한심한 엄마였다. 땀 흘려가며 춤연습에 매진하는 아이에게 독려는커녕 칭찬 한 마디 건네기도 주저하는. 이러면 꼭 내가 도맡기 힘들어서 보내는 전 남편의 귀 먼 말이 확언인 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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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하게기록/일기 2025. 3. 29. 15:53
# 01.매일같이 꼭두새벽에 제일 먼저 도착해서 수영장 문을 열었는데 본인보다 늦게 출근해서 여태껏 경비가 열어준 줄 알았다는 선생의 양아치라느니, 어제 언성을 높여서 정중하게 사과하는 선생은 웃기다느니. 어머니들(비단 어머니 연령대에만 국한되진 않지만.)의 불평불만은 한도 끝도 없으니 실로 피로하다. 대체 뭣이 중하기에 만사가 이다지도 못 미덥고 못 마땅할까. 모르긴 몰라도 개중엔 왜 나를 몰라주느냐는 비틀린 인정욕구 하나는 확신한다.때로는 이런 성화마다 번번이 의식할 바에야 차라리 모르는 척, 못 들은 척하는 법을 터득해야만 그나마 세상살이가 조금은 녹록하지 싶다.# 02.바야흐로 겨우내 기다림 끝에 겨우 피어난 꽃들을 죽일 듯한 꽃샘(이라 쓰고 꽃살이라 읽는다.)추위 시즌이다. 알록달록 다채롭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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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네가 버림받는 게 나아기록/일기 2025. 3. 28. 08:54
# 01.오랜만에 수영강습에서 다행히(?) 강사는 두 달 전 그대로였고, 인원이 늘면서 다시 두 레인을 사용했다. 강사가 일전에 예고한 대로 나와 같은 대에 시작한 회원들 대다수가 승급했다. 복귀라고 해도 네댓 명을 제하고는 얼굴들도, 전과 판이한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낯설었다. 기껏 기분 좋게 마무리된 강습 직후 별안간 다른 반 회원의 레일 사용 건 항의로 강사와 언성을 높인 일도. 이렇듯 익숙하지 않은 익숙함에 차츰 적응될 것이다. 비록 수중기름인양 섞여들진 못하겠지만 전처럼 꾸준하게만 임하다 보면 현상유지는 가능할 것이란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품지 않고서는 도저히 못 견딜 것만 같다. 모쪼록 물만은 아무리 서툰 몸부림이라도 그저 감싸주니까.# 02.문서수발 차 우편 부치러 다녀온 길에 애들 아빠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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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얼마나 더기록/일기 2025. 3. 27. 14:42
# 01.다시 새벽수영을 시작했다. 도저히 못 견딜 지경으로 수영이라도 해야겠는 까닭이다. 오며 가며 낯익은 얼굴들과 정답게 인사 나눴다. 첫 차 버스에서 매니저에 이어 두 달만인데도 면식이 있는 모 회원은 고맙게도 내가 수술받은 사실까지 기억했다. 모 회원은 살이 많-이 쪘다고 굳이 강조를 하며(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전에는 빼빼 말랐는데 통통해진 지금은 보기 좋다는 첨언이 어쩐지 병 주고 약 주는 소리로만 들렸다. 우려와 달리 몸은 제법 기억하고 있었다. 킥판 없이도 자유형과 배영 모두 무사히 유영해 냈다. 비록 너무 오래간만이라 물 먹은 솜 같지만 노력의 흔적이 미욱하게 남았음에 감사했다.# 02.그럴 수 있다, 연으로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숱하게 되뇌어 봐도 하다 하다 딸에게까지 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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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더 버림받아야 할까기록/일기 2025. 3. 26. 08:36
# 01.연의 전학과 이사에 대한 입장이 강경했다. 4월 말까지도 길다며 중순까지 겨우 협의했더니 신난다고 동네방네 알리고 다니더란다.외할머니까지 동원한 각고의 노력을 순식간에 허사로 만든 딸의 변죽이 야속하다가도 안쓰럽다가도 결국은 내 탓으로 귀결된다. 전 남편의 되바라진 양육권과 친권 요구보다도, 부족한 엄마여서 미안하다는 내 말에 엄마는 부족하지 않았으며 단지 자신이 선택한 길이 돈이 들었을 뿐이란 연의 말이 그렇게 사무쳤다. 어쩐지 딸에게까지 버림받는 기분이 들었다. 하다 하다 이젠 딸 마저 나를 떠난다.오후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시간을 따라 감정은 차고 넘치도록 흘렀다. 이렇듯 모자란 인간이라 길바닥에서 통곡을 하고 회사 화장실에서 드림스타트 담당선생에게 전화를 걸어 울었다. 근무 중에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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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질까봐 두려워서기록/일기 2025. 3. 25. 11:43
# 01.잠을 잘못 잤는지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고, 하필이면 당일따라 운반작업량이 많았고, 그 와중에 연은 전학 안 보내주면 죽어버리겠다며 협박을 해오고, 일개 말단의 수고로움 따위 알 바 아닌 윗선에서는 하필이면 유동이 많은 점심시간 초입에 수령품을 들여오라 지시하고, 엘레베이터 이용시간 제한으로 수레를 끌고 다니며 사무실 갔다가 1층 갔다가 라운지 가서 물건을 싣고 다시 1층 갔다가 사무실에 들러야 하는 번거로운 통에 공부 시간을 확보하려면 식사는 이동하면서 대충 때워야만 했다.모두가 자기 시간을 지키려고 내 시간을 아무렇지 않게 착취한다. 나는 그저 내어주고 견디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다수의 요구에 어떻게든 맞추어야만 한다. 가장 낮은 바닥이 내 위치니까.# 02.누누이 말한 상담시간약속을 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