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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말씀만 해주소서
    기록/일기 2025. 4. 1. 08:42

    # 01.

    미워하는 마음으로 삶은 결국 사랑의 또 다른 역설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사랑은 삶과 분리할 수 없다. 그것이 파멸이든, 탄생이든 중요한 원천이자 근간임은 분명하기에.


    # 02.

    모처럼 팀 회식 후 한결 따스해진 한낮의 청계천거리를 걸었다. 현실이 아닌듯한 이질감으로 그렇게나 붐비는 인파에도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새벽수영 다니는 수영장에서나 출근길이나 퇴근길이나 근무 중에도 부대끼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고 나는 외로웠다. 저마다 배우자 투정(이라 쓰고 뒷담이라 읽는다 )을 늘어놓으면 내심 부럽기도 해서 안 들리는 척했다.

    아빠와 살기로 결정한 뒤 한동안 괜찮았던 연은 다시 등교거부 농성을 벌였다. 길어진 통근거리에 자격증 시험까지 바로 목전인데, 새 직장에 적응하기도 바쁜 한 달 내내 아침마다 학교 담임선생에게서, 돌봄선생에게서 수시로 오는 연락에 시달리기가 지겹고 피곤했다.

    나한테 온갖 모진 말로 상처를 퍼붓는 딸아이를 볼 적마다, 십여 년 전 아기띠에 폭 안기던 유독 작고 예쁜 아기를 애써 떠올린다. 내 안의 사랑을 색인하듯 찾아내면 또 그렇게 울컥한다. 네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나를 떠나겠다 싶다가도 너마저 그래야 하냐는 양가감정으로 하여금, 나는 엄마로서도 완벽하게 실패했다는 자기환멸로의 귀결이 그렇게 괴롭다.


    # 03.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데 바로 정면에서 실로 오랜만에 U와 딱 마주쳤다.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입을 딱 벌린 U에게 고개인사만 하고 쌩하니 지나쳤다. 딱히 개의치 않는 듯한 태도에 외려 나만 개의하니 괜히 억울했다.


    # 04.

    비 내리는 시험지를 끝까지 채점하며 속으로 빌었다, 누구든지 두 말씀만 해주소서. 반드시 붙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니 조급해말라고.

    집에 오자마자 손에 잡히는 대로 마구마구 먹어대면서 빌었다. 아니, 한 말씀만 해주소서. 못생겼든 뚱뚱하든 실패하든 어떤 모습이든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그래서 떠나지 않겠다고.


    D-5004⭐️
    2025년 03월 31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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