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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닥쳐, 네가 뭘 알아?
    기록/일기 2025. 2. 28. 12:15

    # 01.

     

    그래, 안 팔리니 당신이 좀 써줘.

     

    # 02.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사수가 휴가로 부재할 때 생소한 업무가 동시다발이었는데다 하필 또 긴급하고 중요한 건이라 점심까지 굶어가며 처리하기 급급했다. 덕분에 주어진 업무 십중 구는 완수했고 많이 배우긴 했지만 직접 컨펌해 줄 사람이 없으니 찝찝하지만 뭐 어쩌랴, 다들 바쁘고 이미 엎질러진 물.

     

    모르겠는 족족 처리 전에 질문하랴, 각종 생소한 용어로 한창 허둥지둥하는데 타 부서 말단은 나더러 잘한다고 소문났다느니 퇴근 직전에 윗선에서도 조용히 잘 처리해 냈다느니 하는 칭찬들이 나로선 뚱딴지가 아닐 수 없었다. 아니면 우회적으로 비꼬는 소린데 내가 너무 곧이곧대로 받아들였을까, 이런 추리는 내가 꼬일 대로 꼬였다는 방증일까.

     

    모쪼록 역시 최고의 식욕억제제는 긴장과 몰두다. 그렇다고 매 순간을 이 지경으로 살 수도 없고, 거 참.

     

     

    # 03.

     

    누락된 강의도 부랴부랴 수강하고, 결국 마감일까지 미루고 미룬 독서후기도 후다닥 제출했다. 무슨 영화를 누리자고 이렇게나 꼼꼼히 써 갈겼지 싶었던 기록이 이렇게나 유용했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도왔다.

     

     

    # 04.

     

    약속 장소(인 줄 알았던) 근처 거리 조명이 예뻤다.

     

    한 자리 차지한 잠옷. 커플템 회수라니 우습다.

     

    내내 긴장 상태로 근무 무 퇴근하자마자 이동하면서  누락된 학은제 강의를 마저 듣고, 진 하원하자마자 돌봄선생 기다리는 동안 애들 먹일 저녁거리 배달을 시키멱서 마지막 과제 제출까지 마치고, 그렇게 허겁지겁 간신히 10분 전에 도착해서 미리 주문까지 다 해놓자 G는 당시 정각에 30분을 늦겠다고 통보해 왔다, 사유는 입을 옷이 없어서.

     

    시간이나 축내자고 자작하는데 30분 뒤에 대체 어디에 있냐는 연락을 받았다. 알고 보니 내가 간 곳은 타 지역의 체인점이었다. 왜 자신이 보내준 주소가 아닌 엉뚱한 곳으로 갔냐며 수화기 너머로 한숨에서 짜증이 느껴졌다. 부랴부랴 포장하고서 가게를 나섰다.

     

     

    # 05.

     

     

    그 뒤로 이어진 대화는 지지부진 지난했다. 자신도 30분이나 늦었으니 쌤쌤으로 치자는 G의 정립이 내키지 않은 것도 같다. 그러는 나도 사과를 했으면 될 일을 술김이었는지 괜한 오기를 부렸다.

     

    기실 그에게 화났기보다는 통상 능히 처리해 낼 일로 하루종일 진땀 빼가며 기진맥진하는 스스로가, 약속 장소마저 착각하는 스스로가, 내게 매력이 없다는 (9일 사귀고 헤어진) 전 남친에게 서운해하는 스스로가, 그 와중에 이런 나를 누군가가 위로해 주길 내심 바랐으나 아무도 없음에 실망하는 스스로가 그렇게 한심할 수 없다.

     

    2차로 이동 후 G가 친구를 부르겠다는 말에 그러라고 했다. 이때부터 슬슬 분위기 악화는 고조됐다. 제가 불러놓고 친구 몫까지 사주겠다는 내가 이해할 수 없다고 하질 않나, 그 와중에 기승전C는 빠지지도 않다. 지긋지긋하다.

     

    내 편을 들고 싶은지 내게 욕을 하고 싶은지 하나만 했으면. 나더러 더 혼나야 된다면서 차라리 시원하게 화를 내라고 부치기는 G에게 술김으로 말끝마다 대꾸했다. 닥쳐, 닥쳐, 네가 뭘 알아. 피차 애송이인 처지에 누가 누굴 가르치려 드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자꾸 닥치라고 할 거면 이만 돌아가라는 G의 말에 자리를 박차고 나섰다.

     

    그동안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반복했지만 이렇게까지 싸웠던 적은 없었을 것이다. 소중함과는 별개로 명이 다해가는 시절인연이었다. 끝맺음이 허무하고 아쉽지만 이 이상 붙듦은 아무래도 과욕인 듯싶다. G의 말마따나 더 이상 뭘 하지 말아야겠다. 아무것도. 연락처도 채팅창도 모조리 지웠다.

     

    제발 너절한 굄에서 벗어나 이다음으로 흐르고 싶다. 지독한 외로움과 무기력에서 벗어나고 싶다.

     

     

    D-5036⭐️
    2025년 02월 27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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