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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
    기록/일기 2024. 12. 11. 17:55

    # 01.

     

    전일 다짐(# 01.) 한대로 버스에서 데스크 직원을 만나 자초지종 설명했다. 강사는 언제든 그만둘 수 있음에도 내 개인적인 상황에 맞물려 서운함을 느낀 것으로 결코 그의 잘못이 아니며, 개인적으로 지금 담당강사의 커리큘럼 역시 기본기가 탄탄해서 만족스럽다고. 그러자 직원은 알아서 필터링했다며 마음에 담아두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다.

     

    듣자 하니 K는 원체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으며 새벽 강습 관련 마음이 놓이지 않아 다시 맡을지 고민 중이라고 한다(그러기엔 인수인계 때 활기찼던 텐션은 비단 나뿐만이 느낀 점이 아니더란다.) 그러면서 내게 충분히 서운함을 느낄 수 있다면서 이윽고,


    데스크 직원 | 내가 선생님 혼내줄까?


    ???


    그녀의 농담 섞인 물음에 나는 손사래를 치며 그러지 말라고, 유년시절에 모 수영강사로부터 성추행 당했던 경험을 잠깐 거론하면서 때문에 두려움이 앞섰던 수영에 흥미를 붙이게 해 준 K에게 늘 감사하며 일방적인 내적 친밀감으로 인한 서운함 탓이라고 황급히 덧붙였다.


    그나저나, 아무리 농담 섞인 뒷말이고 나이차가 있기로서니 상사에게 가당할까? 아니면 내가 모르는 유착관계(혈연이나 지연이라던지)가 있어서인가? 모르긴 몰라도 데스크 직원은 실세임이 분명했다.

     

    또 새삼스레 K의 연령 대비 높은 직급에 놀라운 한편 무릇 그만한 직급이라면 수입원이 주목적이로라도 인연(특히 금전적인 계약관계)을 소중히 여길 법도 한데, 이토록 소홀할 정도라면 현재 그가 놓인 처지가 그만큼 고되구나 싶어 안쓰러웠다. 제 코가 석 자인 오지랖이다.


    모쪼록, 그가 밉고 서운하다가도 돌고 돌아 결국 호의적이 되는 내게 차라리 무관심이기를. 무엇 때문인진 몰라도 나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기를.  다신 마주할 일 없는 타인이면 몰라도 내가 호감을 갖고 지속적으로 만날 사람으로부터 받는 적의만큼 상처가 되는 일은 또 없다.

     


    # 02.


    예약 시간보다 5분가량 지각했다.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중견 탤런트의 외모와 목소리가 빼닮은 정신과 의사의 책상 위에 <말>이라는 제목의 책이 유독 눈에 띄었다.


    의사에게 내방 용건을 간단히 밝혔다. 그러자 의사는 식욕이란 사실 몸에서 원하는 신호라고 했다. 폭식 자체는 문제지만 나의 체중 증가는 고무적이고 지금보다 더 늘려야 한다면서 (내 튼실해진 하체를 제대로 봤다면 그런 말은 쏙 들어갈지도.) 금일 처방약은 일상식사를 병행해야 폭식이 잡힌다고 했다. 연말맞이인지 여느 때처럼 건강하시라는 말 대신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로 마무리됐다.

     

    몸에서 원한다, 라. 내 몸은 회복을 원하고, 내 정신은 성장을 원하는데. 막상 놓인 현실은 고착과 고립 그 자체다. 이곳에서의 탈피, 어려운 한 걸음은 언제 어떻게 시작될 수 있을까.

     

    우선 충동구매와 식욕의 절제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

     

     

    # 03.


    병원을 나선 뒤 도서관으로 향하는데, 온의 담임교사란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자신이 몇 차례 문자를 보냈다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그런 기록이 없었다. 모쪼록 골자는 숙제에 대한 가정차원에서의 학습지도 독려였다.


    통상 1학년이라면 다른 학부모들은 아이 학습 관련해서 밀착해서 신경 써준다며, (노골적인 언급은 없었으나 아이에게 관심 좀 가지라는 전제로 한) 가르치려 드는 거만한 말투가 다소 거슬렸다. 만일 내가 아닌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면 필시 은퇴 전 중학교 교직생활 35년을 들먹였을 테지만 나는 굳이 가정사를 다 까발릴 필요성을 못 느꼈거니와 여타 가정과 대비해 세심한 케어가 부족한 점은 사실이었다.


    나는 온의 정기숙제를 인지하고 또 스스로 실천하길 독려하고 있으며,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본인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하기를 원한다고 하니 담임은 온의 나이로는 혼자서는 못한다며 어머니가 말씀하셔도 지켜지지 않는 부분인데 하물며 선생인 자신의 말을 듣겠냐고 따졌다.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다고 어 다르다고 본질적 의도는 알겠으나 어조가 상당히 거슬렸다.


    해서 받은 대로 되물었다.


    나 |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제가 집에서 어떻게 해주시길 원하신지요?


    그제야 교사는 본론을 말했다. 학교에서의 지도는 한계가 있으니 가정에서 잡아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며 감사 인사를 끝으로 통화를 종료했다. 저자세일 필요는 없지만 마찬가지로 고압적일 필요도 없는데, 추락한 교권에 대한 교사의 방어기제인지 아니면 내 자격지심인지 몰라도 나나 교사나 상호 감정적으로 치우친 존중과 배려가 부족했던 아쉬운 상담이었다.

     

     

    # 04.

     

    강사 | ‘잘’ 이란 부사에 대해서 잘 생각해 보셔야 돼요.


    간단하지만 실로 중요한 말이다. ‘잘’ 살아가는 법, ‘잘’ 죽어가는 법.


    사람마다 상당히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개념이나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신만의 기준과 패턴을 형성하기까지, 무언가를 생각하고 실천에 옮기고 습관을 길들이는 등 경험의 체득을 통한 내제화가 되기까지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조화와 균형의 안배를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D-5115⭐
    2024년 12월 1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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