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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말씀만 하소서>후기/책 2025. 3. 31. 09:54
대한민국의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거장 박완서가 아들을 잃은 참척의 비극을 겪은 이후 차츰 회복되어 가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내면적 기록이다.
서문에서부터 밝힌 극한 상황에서 통곡 대신 썼다는 글들은 외려 보는 이로 하여금 통곡을 자아낸다. 차라리 미치고 싶으나 미칠 수가 없었다는 애처로운 표현은 그녀가 얼마나 칠흑같이 아득한 절망에 사로잡혔을지 감히 헤아리기가 두려울 정도다.
뼈저린 상실감으로 죄책감에 곡기를 끊던 그녀는 이윽고 식사로부터 회복하기에 이르기까지, 숱한 곡절과 만감의 교차가 있었으나 세상을 등지다 싶던 그녀를 삶으로 이끈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었다. 떠나보낸 아들에 대한, 남은 가족들에 대한, 또 말과 글에 대한, 새로운 생명에 대한 사랑이 그녀를 생동하는 삶 속으로 다시금 돌아오게 했다.
이렇듯 사랑은 죽음과 삶, 고통과 회복이 공존한다. 아무리 한 말씀만 해달라고 절규해도 들리지 않던 신의 침묵은, 기실 모든 순간마다 침묵 대신 사랑을 보여주고 있었다.
박완서 특유의 감성과 깊은 통찰이 담겨 있어 미사여구 없는 본연 그대로, (물론 서론에서는 출간하기 전에 너무 심한 정도는 어느 정도 여과를 거쳤다고는 밝혔으나) 때로는 처절하게, 또 때로는 담담하게 보고 느낀 바를 오롯이 담아 마치 실사를 보는 듯 생생하게 전달되어 깊은 여운을 주는 기록이었다.
또한 후기에 어머니를 기리는 딸 호원숙의 문장 역시 애틋하다: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나으리이다. 작가가 남긴 의식의 흐름을 통하여 저마다 나름의 고난 속에서 한 말씀, 한 마디가 필요한 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책이다.'후기 >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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